‘빅브라더’ 국세청은 천사표가 될 수 있을까

  • 2015.10.30(금) 08:42

빅데이터 활용해 세금추징과 납세자 지원 동시에
너무 많은 정보 보유해 난처한 상황도

'빅 브라더' 국세청이 보유 데이터를 활용해 두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한쪽으로는 납세자들을 압박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납세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이 28일 내 놓은 전국 사업자현황 자료는 후자에 해당된다. 전국 661만명의 사업자 현황을 지역별, 업종별로 공개하고 매월 갱신해서 창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내가 창업하려는 지역과 업종의 사업자들 생태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면 업종이나 창업지역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을테니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긍정적일 수 밖에 없다.

 

 

# 국세청은 얼마나 알고 있나

 

국세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정부 조직으로 꼽힌다. 개인과 법인의 소득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재산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납세자의 집주소, 연락처, 가족관계까지 확보하고 있다. 주로 납세자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법인세, 상속세 및 증여세, 양도소득세 등을 신고납부하는 과정에서 수집되는 정보들이다.

 

자연스럽게 개인사업자의 창업과 폐업, 휴업 현황도 파악되고, 근로소득자가 취업중인지 퇴직중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결혼했는지 이혼했는지도 알 수 있고, 근로자 연말정산자료를 통해서는 각 개인이 의료비나 교육비를 어디에서 얼마나 썼는지, 은행빚은 얼마나 지고 있는지, 어떤 보험을 많이 가입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

 

국세청의 정보는 점점 더 늘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전자세금계산서 의무화로 사업자들의 정보는 자동으로 국세청 정산망에 입력되고 있고, 의무화 대상도 면세사업자 등 전 사업자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정보분석원(FIU)과의 정보공유가 확대되면서 개인간, 법인간, 개인과 법인간의 자본의 이동정보까지도 더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됐다. 또 외국 과세관청과의 정보교류협정을 확대하면서 개인이나 법인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과 소득에 대한 정보까지 확보하고 있다. 국세청이 정보를 집중 독점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로 불리는 이유다. 법률에서 개별 납세자의 정보를 유출시키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도 국세청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납세자 압박용으로 활용되는 정보들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정보는 주로 납세자들을 압박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현장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세무조사를 늘리는데 한계에 봉착한 국세청은 최근 들어 사전고지 안내와 그에 따른 사후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은 올해 이런활동을 많이 했으니 이런 쪽으로 세금이 많이 나올 거다. 잘 확인해서 신고해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사전안내다. 사후검증은 국세청에서 이렇게 경고했는데 왜 제대로 신고납부를 안했냐는 검증절차다. 모두 국세청이 보유한 막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세원확충반안이다.

 

국세청의 압박은 먹혀들어가고 있다. 워낙 확실한 정보를 들이밀기 때문에 반발하기도 쉽지 않다. 납세자들은 사전안내문에 따라 고분고분 세금을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세수입도 좋아지고 있다.

 

올해 7월말까지 국세수입은 129조93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7243억원 늘었다. 최근 3년간 세수부족에 시달렸던 상황에다 올해도 세수입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전망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성과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국세청의 사전신고안내의 활약을 꼽는다.

 

대형 회계법인의 세무부문 고위관계자는 "국세청의 사전에 통지를 따를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높은 수준의 정보를 바탕으로 안내가 이뤄지기 때문에 납세자들도 나중에 불복하더라도 일단 세금을 내고보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 천사표를 달고 싶은 국세청..저소득층 지원 선봉

 

국세청의 빅데이터가 어려운 납세자를 지원하는데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최근 들어 국세청의 이런 '천사표' 역할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근로장려금제도와 자녀장려금제도는 대표적인 세금 지원책이다. 국세청이라면 세금을 걷는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이 두가지 정책은 걷은 세금을 나눠주는 일에 해당된다.

 

근로장려세제는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세금을 환급해주는 형태로 지원되는데 올해 118만 가구에 무려 1조원이 지급됐다. 자녀장려금은 자녀가 있는 가구에 일정금액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제도인데 이 역시 저소득층에게만 지원된다. 올해 100만가구에 6085억원이 지급됐다.

 

시행초기여서 자료의 세분화가 덜 돼, 활용도는 좀 떨어지지만 28일에 공개된 전국 사업자현황정보도 저소득층 지원책 중의 하나다. 세탁소, 미용실, 음식점 등 영세사업자들이 집중돼 있는 30개 업종을 생활밀접업종으로 구분해 전국의 현황을 볼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은 창업지원이라는 국세청의 의도에 긍정적인 점수를 부여할 만하다. 국세청은 공개정보를 더 세분화할 계획이다.

 

# 정보가 너무 많아 슬픈 국세청?

 

국세청이 너무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서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압박용 정보와 천사표용 정보가 묘하게 겹치는 순간도 발생한다.

 

지난해 국세청이 근로장려금을 지급한 가구 중 3만5000가구가 체납세금을 먼저 떼였는데, 이 중 1만9000가구는 근로장려금 전액을 체납세금으로 떼여서 한푼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면서 현실은 밀린 세금을 충당하는 것부터 우선했다는 얘기다. 환급하는 세금으로 체납세금을 메우는 황당한 결과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근로장려금보다 체납세액징수권이 우선되기 때문인데, 국세청 입장에선 근로장려금 대상이라는 정보와 세금체납정보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체납액을 떼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최근 도입된 자녀장려금 역시 체납액 우선추징이 원칙이다. 관련 법개정이 추진중이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국세청은 법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집행하는 기관이라 정보는 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정보가 많다보니 세금과 무관한 일을 하기도 한다. 2011년부터 국세청이 시행하고 있는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의 상환업무는 교육부가 청년들에게 학자금을 대출해 준 것을 거둬들이는 역할이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대학등록금이 없어서 국고에서 학자금을 빌린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하게 되면 소득에 따라 원리금을 갚도록 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는 빚을 받아내는 일도 빚을 내어준 교육부가 시행해야할 일이지만 개인의 소득정보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국세청이 빚을 받으러 다니는 채권추심역을 맡게 됐다. 지금은 법개정이 많이 됐지만, 시행초기 아르바이트로 번 돈까지 추징하는 등 깐깐한 상환기준 때문에 국세청이 비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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