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자 처벌 범위를 감사인인 회계법인의 최고위직과 최하위 실무자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발단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분식회계 근절 대책’. 회계법인의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감독업무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를 시킬 수 있도록 하고, 현장에서 1차적 감독업무를 수행하는 매니저급 회계사들은 현장업무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등록취소와 검찰고발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재방안이다.
회계법인이 기업의 외부감사를 나갈 때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현장 최고감독자(주책임자)인 디렉터 혹은 파트너급 회계사와 이 지시를 받아 감사업무를 이행하는 시니어나 매니저급 회계사, 그리고 이들의 업무를 현장에서 보조하는 주니어급(수습회계사 포함) 회계사다.
현재는 회계감사의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 주책임자인 최고감독자를 위주로 처벌을 받는다. 현장의 실질적인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위급 회계사들은 주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특히 현장과 거리가 있는 대표이사는 징계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조치는 특정기업에 대한 감사책임을 현장의 회계사가 아니라 사실상 해당 회계법인 전체가 지도록 강화한 내용이다.

분식회계에 대한 제재와 책임추궁은 그동안 계속 강화돼 왔는데 이번 조치는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흐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식회계의 출발은 기업이다. 기업이 재무상황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고의적으로 숨기고 왜곡시킨 것이 분식회계다. 당연히 분식회계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쪽은 그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다.
중간에서 회사의 재무상황에 대해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인증해준 회계법인의 잘못도 크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 회계법인 인증의 근거가 기업이 제출한 자료에 있다는 점은 회계법인보다는 기업에 더 무거운 책임을 부여하게 만드는 근거다. 기업과 회계법인이 결탁하지 않고서야 아무리 똑똑한 회계사가 감사를 하더라도 기업이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숨겨진 분식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특히 대기업들은 회계법인의 주 고객들이고, 갑을관계로 보면 회계법인이 을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는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기업의 부실한 정보보다는 회계법인의 부실한 감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계법인은 감사현장 인력의 대부분이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지만 기업은 분식회계의 책임을 최고경영자만 진다. 분식회계에 연루된 임원급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시킨대로 한 재무팀 인력 전체가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회계법인의 시스템에 비춰보면 부적절한 부분이 좀 더 부각된다. 회계법인의 대표이사는 기업의 대표이사와는 지위와 역할이 다르다. 회계법인은 파트너라는 지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유한책임 회사다. 파트너급 회계사들이 총회를 열고 투표를 통해 대표이사를 선출한다. 특정기업에 대한 감사업무는 전적으로 파트너급 회계사 개인의 책임하에 진행된다. 굳이 회계법인 대표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특정기업 감사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회계법인 내부의 감사품질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 더 맞다.
이번에 함께 포함된 기업의 감사와 감사위원에 대한 징계처분 강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부적절하다. 우리나라 기업은 사외이사는 물론 감사나 감사위원의 선임에도 최고경영자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곳이 많다. 감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근본적 처방이 배제된 상황에서 결과물만 놓고 징계부터 앞세우는 격이다. 책임을 물으려면 거기에 맞는 권한의 부여가 우선이다.
분식회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에도 대우의 20조원 규모 분식회계로 나라가 뒤집혔고, 불과 2년 전인 2013년에는 동양그룹과 효성그룹의 분식회계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은 15년 전의 대우의 후신인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가 재계 전반을 흔들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대형 분식회계 사건이 터질 때마다 회계투명성 강화방안을 내 놨다. 주로 감사인의 강제지정이나 감사인에 대한 처벌강화가 핵심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감독업무를 소홀히 한 회계법인의 처벌은 갈수록 강화된다. 분식회계가 기업 자체는 물론 종업원과 투자자 등에게 큰 파장을 미치고, 경제과 시장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제대로 날 수 없다는 점이다. 분식을 지시하고, 이를 은폐하는 등 근본적 책임을 져야 할 기업 경영진에 대해서 엄정한 규율이 있어야 한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회계부정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책임 추궁은 엄격하다. 회계법인을 감독하는 금융위나 금감원의 부실감독 책임을 누구도 묻지 않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국가 회계투명성 순위가 수십년째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해 정부와 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