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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0시간, 이 남자가 조세소송과 함께 한 시간

  • 2017.04.06(목) 08:00

[특별인터뷰]조세소송 최고 권위자 소순무 변호사
"의원입법 지양하고 정강으로 세법 만들어야"
"로펌도 사회적 책임 다해야 지속경영 가능"

조세소송분야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소순무 변호사가 법무법인 율촌 조세그룹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조세법 학계로부터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25년 조세법 전문가의 업적을 기리는 논문집이다. 지난해 8월부터 후배들이 소 변호사 몰래 간행위원회를 구성했고 안경봉 한국세법학회장을 비롯해 박훈, 오윤, 윤지현, 이재호, 이준봉 교수 등 조세법학분야 전문가 31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23일 열린 논문집 증정식에서 안경봉 한국세법학회장은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는데 소 변호사가 조세소송에 헌신한 시간은 6만 시간에 달한다. 조세소송 전문가의 길을 일생의 과업으로 알고 헌신해온 데 대해 부럽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소 변호사는 지난해 정년을 맞아 현직 조세전문 변호사의 역할을 끝내고 공익법인 이사장으로 새 길을 열고 있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 조세법 전문가를 택스워치가 만났다.

▲ 소순무 변호사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 율촌과의 인연은
▲ 법무법인 율촌이 설립된 지 올해 20년이 됐다. 대표를 맡고 있는 우창록 변호사가 1992년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나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가 1997년 7월에 법인을 만들었다.
 
대학 동기인 우 대표가 함께 하자고 해서 2000년에 합류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하다가 명예퇴직을 하니까 대형 로펌 여러 군데서 오라고 했지만 우대표와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 그땐 부장판사 출신이 로펌으로 잘 가지 않는 시기였다. 
 
- 율촌에서 17년, 후회는 없나
▲ 율촌에 합류할 때만 해도 율촌은 변호사가 20여명에 불과한 소형 로펌이었다. 실력은 있었지만 기존의 대형 로펌의 견제가 심해서 수임 마지막 단계에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큰 로펌들은 법관 출신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관료 출신들이 적응하기 쉬웠다. 하지만 율촌은 전관이 없는 변호사 출신들이 만든 실무형 조직이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일하고 연구하는 율촌의 조직문화가 오늘의 나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 율촌은 조세분야 강자로 꼽힌다. 다른 로펌과의 차이는
처음부터 우창록·윤세리 변호사가 산학협동 형태로 교수들과 연구하는 시스템을 잘 갖춰놨더라.
 
학계 원로와 교수들을 모시고 매주 수요일마다 택스미팅이라는 모임을 하는데 그 모임만 20년이 됐다. 그 자리에서 중요한 조세쟁점에 대해 토론하고 학문적 흐름을 공유한다. 또 구성원의 대학원 진학이나 강의에 대해 경력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쌓여서 차별화를 만든 것 같다.
 
- 조세소송을 전문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 1992년 서울고등법원 특별2부에 배석판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조세소송을 처음 접했다. 특별부는 민형사를 제외한 행정항소나 행정재심을 담당하는데 고법이 1심이고 대법이 2심이다. 조세소송을 담당하는 특별부는 다들 한번씩 근무하고 싶어 하지만 기회를 잡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판사경력 12년만에 겨우 기회를 잡은 셈인데 그것이 계기가 돼 대법원에 가서도 재판연구관 조세전담조에 배치됐다. 
 
재판연구관을 마칠 무렵 경희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예전엔 법대 정규과정에 세법 강좌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이후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책을 써봐야겠다고 해서 쓴 것이 '조세소송'이다. 율촌으로 오게 된 것도 법관을 해서는 순환보직 때문에 조세소송 분야에 집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17년 동안 조세소송은 몇 건이나 맡았나
▲ 전담한 것도 있고 도와준 것도 있기 때문에...율촌에서 하는 조세소송 송무사건은 대부분 스크린했다고 할 수 있다.
 
- 가장 기억 나는 소송은
몇 건 있다. 주상복합 발코니 전용면적에 대한 양도소득세 문제였던 타워팰리스 커튼월(발코니를 건물외벽 안에 설치) 소송건은 오랜 기간 애를 먹었다. 교보생명 재평가 건은 10년이나 걸린 데다 대법원 판례도 바꿨고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결국 이겼던 소송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밖에도 중복세무조사의 위법성 판례, 엔화스왑예금 판례,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이중과세판결 등 조세분야 소송에서 선례가 되는 판례들을 많이 이끌어 냈다.
 
- 조세정책의 아쉬운 점은
▲ 우선 세법을 입안하는 세제실에 싱크탱크 기능이 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돕고 있으나 세법 전공자가 드물다. 일본의 세제조사회와 같은 상설 회의체 운영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가 세법을 입안할 때 너무 시류에 휘둘리고 정치권 요구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세금이 국가재정의 근본인데 우리처럼 1년에 여러번 개정하는 나라는 없다. 정부의 조세정책은 중립적으로 가야하며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세법은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특히 의원입법은 지양해야 한다. 정당에서 정강으로 세법이 나와야지 의원 몇사람이 깎아주자 올려주자 해서 수도 없이 만드는데 이건 넌센스다. 정부 입법은 부처간 협의도 하고 법제처 심의도 거치고 하는데 국회 입법은 그렇지 않다. 좋은 입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지난해 정년과 함께 이사장을 맡은 온율은 어떤 곳인가
온율은 율촌이 만든 공익재단이다. 지금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지속경영이 어렵다. 로펌도 마찬가지다. 원래 율촌의 파트너들은 수익의 2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대로 다 하지는 못했지만 이걸 지속해서 할 수 있는 법인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든 게 온율이다. 저도 개인적으로 1억원을 기탁했다.
 
온율에서는 법률 취약계층 지원도 하지만 역점을 두는 사업은 성년후견제 정착 활동이다. 4년 전에 민법이 개정돼 금치산과 한정치산이 없어지면서 성년후견제로 바뀌었는데 고령사회가 되면서 제도의 필요성이 커졌다. 치매가 오면 누가 도와주고 재산은 누가 관리해주나. 이런 점에서 성년후견제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하면서 큰 로펌들이 공익사업을 같이 모색해보자는 차원에서 로펌 공익네트워크를 발족했다. 아직은 느슨한 단계지만 10대 로펌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 앞으로 로펌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공익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사진 : 이명근 기자/qwe123@

◇ 소순무 변호사는

1951년 3월 23일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산골에서 태어난 시골청년 소순무는 66년 뒤 대한민국 조세분야 최고 권위자가 됐다.
 
하지만 성공의 뒤에는 시련도 많았다. 서울대 법대에 응시했다 낙방하면서 첫번째 실패를 맛봤고, 재수를 거쳐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4학년 때 도전한 사법시험(15회)에서 탈락한 후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진로 변경까지 생각했지만 군복무 시절 응시한 사법시험(20회)에 합격하면서 몇 걸음 늦게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법관생활을 하던 그가 조세와의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고등법원 특별2부 배석판사 때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전담조에 배치돼 지방세 등 가벼운 사건을 전담하다 대법원 조세사건을 총괄하는 조세팀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조세소송 연구에 매진했다.

세법에 대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경희대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조세소송 바이블로 꼽히는 '조세소송'을 펴냈다. 2000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부장판사를 끝으로 명예퇴직한 그는 서울대 동기인 우창록 변호사의 권유로 율촌에 합류해 17년 동안 조세그룹을 이끌어왔다.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조세연수원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고 한국세법학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조세분야 공익활동도 활발히 했다. 2014년 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지면서 또 한번 실패를 맛봤지만 조세분야에서의 신망은 누구보다 높다. 현재는 율촌이 만든 공익법인 온율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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