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변칙 증여` 안 봐준다

  • 2017.08.23(수) 16:08

우회거래·위장계열사로 과세 회피
가족기업 주주 증여, 재산은닉 탈루

국세청이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변칙 증여에 대해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적폐로 규정해온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17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대다수 성실한 납세자에게 상실감을 주는 대기업·대재산가의 탈세와 역외탈세에 대해 더욱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9월부터 6개월간 대기업·대재산가 변칙 상속·증여 검증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한다. TF는 우회거래와 위장계열사 운영을 통한 과세회피 유형을 정밀 검증할 방침이다.
 
국세청의 검증 대상이 될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변칙 증여 행위를 미리 들여다봤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자녀 회사에 일감떼어주기
 
기업 오너의 자녀가 운영하는 회사에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일감떼어주기' 방식은 국세청이 최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유형이다. 일감떼어주기를 한 기업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처음으로 증여세를 신고납부하라고 안내했고, 지난 6월말 과세기한이 종료돼 현재 사후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직원 1000명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의 운영권을 회장 아들이 대표로 있는 외식업체에게 넘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기존 구내식당 업체가 함께 운영하던 회사 내 카페를 회장의 며느리에게 떼어주는 것도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본다. 
 
국세청은 일감떼어주기를 통해 사업기회를 제공 받는 회사는 사실상 이익을 증여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추징한다.
 
# 중간에 거래 끼워넣기
 

대기업이 그동안 거래해 오던 하청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고 중간에 오너 아들 회사를 끼워넣어 매출을 몰아주는 것도 검증 대상이다.

 

가령 피자를 만드는 회사가 치즈 납품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오너의 딸이 운영하는 유통업체를 거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오너의 딸은 가만히 앉아서 마진을 붙여 치즈를 유통하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녀 출자법인에 대한 부당지원과 변칙적 일감몰아주기 등 세금을 내지 않는 경영권 승계를 적극 차단하겠다"며 "협력업체 관련 불공정 행위의 탈세 관련성 여부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위장계열사로 간 이익
 
기업 오너의 자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위장계열사도 국세청의 검증 대상이다. 공식적으로는 오너가 경영하는 기업의 계열사가 아니지만 차명주식을 통해 자녀가 관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인테리어 업체의 실소유주가 차명주식을 보유한 건설사 오너의 손자인데 이 회사와 할아버지 소유의 건설사가 전속 계약을 맺는 경우다. 인테리어 업체가 벌어들인 이익은 고스란히 손자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국세청 출신의 한 세무사는 "대기업 세무조사를 보면 차명주식으로 위장된 오너일가의 계열사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위장계열사는 변칙 증여를 통한 탈세와 비자금 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거액의 세금 추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가족기업의 자녀 주주들
 
재산가들이 가족기업을 설립해 변칙 증여하는 사례도 국세청에서 주목하고 있다. 자녀들을 주주로 등재해 월급이나 배당금을 지급하고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동산 임대업체 '정강'을 이용해 가족들에게 변칙 증여한 수법이 대표적이다. 
 
비상장회사인 정강은 우 전 수석의 아내 이모씨가 50% 지분을 갖고 있고 우 전 수석이 20%, 세 자녀가 각각 10%씩 보유한 가족기업이다. 이 회사는 서울과 부산의 빌딩을 매입해 임대수익을 내는데 가족들이 타고 다닌 회사차의 유지비를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회사 비용(접대비, 복리후생비, 교통비 등)으로 처리했다. 
 
정강은 대표이사인 이씨로부터 75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썼는데 실제로 부담했어야 할 이자는 주주인 자녀들이 증여를 받은 셈이 된다. 한 법무법인 세무사는 "법인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낮기 때문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세부담 차원에서 유리하다"며 "빌딩으로 임대소득을 올리려는 재산가들이 선호하는 방법이지만 회사차 비용처리나 성실신고 확인 등 가족기업 관련 세법 규제는 점점 강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무기명채권·비트코인 등 수상한 자금
 
부모가 자녀에게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면서도 세금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탈루 수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무기명채권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는 개인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고도 손쉽게 증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대재산가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된다. 금괴나 비트코인을 통해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여세 탈루 수법은 국세청의 조사를 통해서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과세당국 관계자는 "무기명채권과 CD는 거래 당사자의 신분을 숨길 수 있어 뇌물이나 비자금, 증여자금으로 쓰이기도 한다"며 "강제적 절차를 통해 세금포탈의 근거를 확보해야 하지만 입증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자녀의 재산이 갑자기 증가했거나 고액 부동산을 매입한 경우에는 국세청의 자금 출처 조사를 통해 증여세 탈루 여부를 가려내게 된다. 자녀가 자력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국세청은 "고액 자산가에 대해 자금출처 검증을 강화하고 관련자에 대한 분석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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