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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세법을 모르는 세무공무원

  • 2018.10.18(목) 10:56

선택과목으로 바뀐 후 세법·회계학 기피 급증
9급 회계실무 교육에 투입되는 예산도 늘어

▲세종시 국세청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납세자들은 국세청이나 일선 세무서 세무공무원들의 말을 철석같이 신뢰하죠. 세법이나 회계분야는 납세자 본인보다 세무공무원이 전문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무공무원들이 납세자들의 기대와 달리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자료가 공개됐습니다. 세법이나 회계학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세무 공무원이 되는 비율이 상당이 높다는 통계입니다. 
 
9급 세무공무원 공채 2차시험 응시 현황이 그것인데요. 9급 세무공무원 공채시험 중 1차 시험은 다른 행정직 공채시험과 동일하게 국어, 영어, 한국사를 치르고 2차 시험은 세법개론과 회계학을 포함해서 사회, 과학, 수학, 행정학개론 중 2과목을 '선택'해 치릅니다. 
 
세무공무원이 갖춰야할 핵심 지식인 세법개론과 회계학이 선택 응시과목으로 편성되면서 두 과목 모두 응시하지 않고 세무공무원이 되는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겁니다.
 
실제로 세법개론과 회계학을 모두 피하고도 시험에 최종 합격하는 9급 세무공무원은 2015년 전체 합격자의 75%에 달했습니다. 그 비율은 다소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해도 65.5%나 됩니다. 
세무공무원은 납세자와 직접 부딪히는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요하는 직군입니다. 이에 따라 세무공무원 7급 공채 및 6급 승진시험, 5급 승진시험 등에서는 세법과 회계학이 모두 필수과목입니다. 
 
그런데 유독 9급 세무공무원 공채시험만 이들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치르고 있다는 점은 좀 의문이죠. 직급이 낮을수록 납세자와 만날 일이 더 많은데 말이죠.
 
알고보니 문제는 2011년에 시작됐습니다. 예전에는 세무공무원 9급 공채에서도 세법과 회계학은 필수과목이었는데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9급 공무원 시험에 고졸자들이 많이 합격할 수 있도록 시험을 좀 쉽게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공무원 공채 시험에 변화가 옵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당장 인사혁신처가 움직여서 시험과목 개편에 들어갔고, 2013년 9급 공채시험부터는 고교 정규과정에 있는 사회, 과학, 수학이 갑자기 2차 시험 과목으로 들어왔고요. 세법개론과 회계학은 이를 포함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목으로 바뀌었습니다.
개편안은 학력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구조를 바꾸자는 좋은 취지이긴 했는데요. 결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응시생들 대부분이 어려운 세법과 회계학을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사회, 과학, 수학을 선택하면서 전문분야 공직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죠. 그렇다고 고졸합격자 비율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고요.
 
■ 9급 세무공무원 공채 합격자 중 고졸출신 비중
2012년 1.1%
2013년 1.5%
2014년 1.3%
2015년 1.1%
2016년 0.9%
2017년 0.3%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국세청은 9급 세무공무원이 들어오면 실무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회계실무' 자격증(회계실무 2급)을 꼭 취득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동기부여를 위해 회계실무 2급을 취득하지 못하면 승진과 보직배정에서 패널티도 주고 있죠. 
 
그런데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세법과 회계를 멀리하다보니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는 세무공무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 한명도 없었던 회계실무 자격 미취득 9급 세무공무원은 2016년에는 전체 9급 공무원의 58.1%까지 차지했습니다. 인사에 패널티를 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그나마 자격을 취득하는 속도도 늦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9급으로 임용된 후 1년 안팎에 회계실무 자격을 취득했는데요. 2014년부터는 임용 후 1년 내 자격을 취득한 세무공무원이 3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러다보니 이왕 뽑아 놓은 인력을 활용해야 하는 국세청 입장에선 9급 세무공무원들의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2년에 400만원에 불과했던 국세공무원 교육원의 9급 신규 임용후보자(합격자)대상 '회계실무교육'예산은 2015년 8400만원, 2017년에는 1억2900만원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번 통계를 공개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정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세법과 회계학 역량이 부족한 세무공무원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교육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며 "세법과 회계학을 모두 필수과목으로 재지정하는 등 9급 세무공무원 시험과목 개편이 시급하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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