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특별기획 좋은기업

①돈보따리 싸들고 창업가 기다리는 중관춘

  • 2015.05.26(화) 08:00

비즈니스워치 창간2주년 특별기획 <좋은기업>
[기업하기 좋은 곳을 찾아서] 중국 ICT 편
전자상가서 창업 요람으로 탈바꿈
카페서 '네트워킹-인큐베이팅-투자' 한번에

한국은 좁다. 규제로 팍팍하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으나 샤오미나 알리바바 같이 세계 무대를 휘어잡는 '샛별' 기업들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기업가들의 퍼스트 무버와 창조 정신을 받아줄 만한 충분한 자양분이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투자 받기 좋고 인재 구하기 쉬우며 사업하기 편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존의 틀을 깬 혁신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키우는 산업 환경과 글로벌 무대에서 뛰고 있는 국내외 기업들을 찾아가 봤다.  [편집자]

 

[베이징=임일곤 기자] 간판만 보고 들어가면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쇼파와 탁자들이 놓여 있고,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낯선 장면이 펼쳐진다. 10여명 정도 앉아 강의를 들을만한 소규모 회의실이 눈에 들어온다. 적게는 한 두 명에서 많게는 10여명씩 모여 일할 수 있는 사무실도 마련돼 있다. 카페에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능이 결합된 신종 업소다. 요즘 중국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핫(Hot)'하다는 장소, 이른바 창업카페 얘기다.   
 

▲ 중국 베이징 중관춘 창업카페촌에 있는 '3W 커피닷컴'의 내부 벽면에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를 비롯해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중국 주요 기업 창업자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 3W 커피닷컴 복도 한복판에는 TV 화면을 통해 예비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를 소개하거나 투자자들의 이력을 설명하는 영상물이 방영된다. 통로를 따라가면 회의실과 입주공간이 나온다.

 

창업카페가 몰려 있는 중관춘은 원래 '용산 전자상가'와 같이 개인용 컴퓨터(PC)와 게임기 등을 주로 파는 전자상가 밀집촌이었다. 그러다 PC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중관춘의 색깔도 바뀌었다. 중국 정부가 새로운 성장엔진 중 하나로 창업을 꼽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창업의 요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자동차로 10~20분 거리에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중국 최고 명문대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창업 열기를 뜨겁게 하는 요인이다.

 

◇창업카페, 중관춘 명물로

 

지난달 29일 방문한 베이징 하이디엔구 중관춘에 있는 '처쿠(車庫)카페'. 80여명의 젊은이들이 제각각 노트북을 펼쳐놓고 프로그램을 짜거나 무언가를 개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처쿠카페는 현재 성업 중인 중관춘 창업카페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 카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때 유행했던 창업카페를 모방해 만든 곳으로, 지난 2011년 문을 열었다. 스티브 잡스가 집 옆에 딸린 차고에서 지금의 애플을 설립했다는 데서 착안해 차고(車庫)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주인은 벤처기업 창업가 출신으로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카페를 시작했다. 단순히 식음료 장사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매주 정기적으로 예비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든 것.

 

▲ 중관춘의 유명 창업카페인 '처쿠카페' 내부엔 젊은 예비창업가들이 제각각 노트북과 태블릿PC, 스마트폰을 꺼내놓고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다 .


카페 한쪽 회의실에선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예비 창업가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사업 발표회를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스타트업은 카페 내 사무실에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할 수 있다. 회사와 꿈을 키우며 더 큰 규모의 투자 유치 기회도 바라볼 수 있다. 카페 내에서 네트워킹과 인큐베이팅,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마침 기자가 찾아간 날도 미팅이 열리고 있었으나 참관할 수 없었다. 미리 예약한 사람만 회의실 입장이 가능한데, 만석이라 취재가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관계자는 "유명 창업카페에선 한달 전에 예약을 잡아야 겨우 참석할 수 있을 정도"라면서 "거물급 투자자들이 올 때에는 예비 창업자들간 발표 경쟁도 더욱 뜨거워진다"고 귀띔했다.

 

◇민관 손 맞잡고 창업 메카로  

 

처쿠카페는 중관춘 창업카페촌의 명물이자 효시이기도 하다. 이 곳이 기대 이상의 관심을 모으자 하이디엔구 정부는 주변을 아예 창업거리로 만들었다. 작년 6월부터 현재까지 총 1억8000만위안(한화 320억원)을 투입, '혁신길(Inno Way)'과 '지적재산권길(IPR Way)', '핀테크길(FinTech Way)' 등 각각 특색을 가진 3개의 거리를 조성했다.

 

아이디어와 인재, 투자, 시장, 네트워크를 집적한 창업의 요람으로 키운 것이다. 현재 처쿠카페 주변으로 '3W 커피닷컴' '36KR'  '빙고' 등 20여개 카페와 창업지원기관이 들어서 있다. 

▲ 하이디엔구 중관춘 창업카페 거리에는 200미터 가량의 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창업카페와 지원시설 등이 늘어서 있다.

 

정부 당국이 체계적인 지원을 펼치면서 창업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하이디엔구에 따르면 작년 6월부터 현재까지 매주 평균 15번의 창업 발표회가 열렸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스타트업수만 400개다. 이 가운데 해외 유학파가 창업한 곳은 60개에 이른다.

 

특히 중관춘에서 활동하는 투자기업 수는 2200곳에 달한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스타트업 수보다 무려 5배나 많은 수치다. 중관춘에는 돈보따리를 싸들고 유망 스타트업을 찾는 투자자가 많다. 웬만한 투자기업들은 소개 팜플렛을 카페 곳곳에 비치해 홍보하고 있다. 팜플렛을 살펴보면 투자자의 사진부터 이력이나 투자 철학을 소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스타트업이 입주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설명도 꼼꼼히 제시해놨다.

 

중관춘 창업카페촌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도 뜨겁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리커창 총리는 지난 7일 '3W 커피닷컴'을 방문해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담화를 나눴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2010년 당시 부총리 시절 각 정부부처에 중관춘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원을 지시하며 '중관춘 개혁'을 이끈 장본인이다.

 

▲ 3W 커피닷컴 한쪽 벽면에는 수십명의 투자자 얼굴 사진을 모아 놓은 게시판이 걸려 있다. 중관춘에서 활동하는 투자기업 수만 2200개에 달한다.

 

기업 역시 예비 기업인 양성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중관춘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레노버는 이 곳에 '레노버의 별'이란 의미의 '렌샹즈싱(聯想之星)' 창업카페를 만들었다.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규모는 10억위안에 달한다.

 

민관이 팔을 걷고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중국 경기 둔화와 함께 발등의 불로 떨어진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지난 1999년만 해도 중국 한해 대졸자수는 85만명이었으나 최근에는 한해 700만명이 쏟아지면서 심각한 고학력 취업난을 겪고 있다. 경기둔화 속에 취업난을 타개하고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20년간 거주하며 벤처캐피탈 '성언다(盛恩达) 국제투자관리유한공사'를 만든 오병운 박사는 "과거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이었으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공무원의 반(反)부패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공무원 인기도 많이 시들해졌다"면서 "대졸자들이 무섭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지면서 국가 차원에서 창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