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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혁신]CU에 해외 '띵작'이 많은 이유

  • 2019.05.27(월) 10:08

[창간기획]이태훈 BGF리테일 해외소싱팀장 인터뷰
2년 전 국내 편의점 업계 처음으로 '해외 직접 소싱'
모찌롤·대왕젤리 등 세계 곳곳서 '대박 디저트' 공수

"2년 반 동안 50여 개 제품을 들여왔는데요. 그간 저희 팀이 검토한 상품만 1000개가 넘습니다. 제조업체가 수차례 거절해도 들여오고 싶은 제품이라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연락합니다. 그쪽 담당자가 바뀔 수도 있잖아요. 하하하."

국내 편의점 업계 1위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엔 해외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팀이 있다. 팀장은 팀원의 '조건'으로 수차례 거절을 당해도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가장 먼저 꼽는다. 상대업체에 꾸준히 메일을 보내고, 기회가 되면 바다 건너 공장으로 찾아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거리를 누비며 끊임없이 발품을 파는 고된 작업까지 병행해야 한다. BGF리테일이 지난 2017년 국내 편의점 업계 최초로 만든 '해외소싱팀'이 이야기다.

국내에서야 CU 직원이라고 하면 어디 가서 푸대접 받는 일이 별로 없을 테지만 해외에선 CU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업무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그런데도 BGF리테일 내부에서는 이 팀을 지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해외소싱팀에 대한 조직의 기대감도 크다. 2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이른바 '대박 상품'을 줄줄이 터뜨리고 있는 덕분이다.

편의점 '신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면 누구나 알 만한 일본 모찌롤과 태국 모구모구 주스, 대만 대왕젤리 등이 바로 이 팀의 작품이다. 이른바 최근에 이슈가 됐던 '띵작'(명작과 글자 모양이 비슷해 만들어진 인터넷 신조어)을 줄줄이 내놓고 있는 셈이다. 이후 다른 경쟁사들도 속속 해외 직소싱에 나서는 등 업계 트렌드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래서 이 팀을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편의점 최초 '해외직구팀' 설립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BGF리테일 본사에서 이태훈 상품본부 해외소싱팀 팀장을 만났다. 그를 만나자마자 '해외에 많이 다니시겠다'라고 물으니, 며칠 전 일본에 다녀왔고, 이달 중 다시 태국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했다. 빡빡한 일정 탓인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넘쳐 보였다. 그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요즘 젊은 층들이 흔히 '인싸템'이라고 하는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팀장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해외 상품을 고를 때 CU만의 기준이 있는지다. 사실 이미 대형마트나 세계 과자 전문점에서 살 수 있는 상품들이 적지 않은데, 유독 편의점에서 '대박'을 치는 이유가 궁금해서다.

이 팀장이 꼽은 비결은 간단명료했다.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형마트에서 소싱하는 상품과 편의점 상품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형마트의 경우 이미 고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 수요가 충분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팀의 경우 소비자들이 재미있게 생각할 만한 제품 위주로 소싱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그러면서 일본에서 들여온 모찌롤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사실 CU의 모찌롤 출시는 다른 경쟁사보다 늦었다. 일본 편의점에서 모찌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국내 제조업체와 함께 발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내놓은 편의점이 있었다.

반면 CU의 경우 조금 늦더라도 일본에서 직접 들여오는 전략을 택했다. 이 팀장은 "'일본에 가야 볼 수 있던 바로 그 오리지널 제품이 CU에도 있네'하고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가 말하는 '재미'"라며 "모찌롤 역시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모찌롤, '오리지널'이어야 했다"

모찌롤은 일본 현지에서 냉장으로 유통돼 팔리는 탓에 국내로 직접 들여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팀장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찌롤 같은 제품을 수입해오면 냉동상태로 가져와야 해 국내에서도 냉동으로 팔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다시 냉장상태로 만들어 팔기로 하고 들여왔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으로 CU의 '오리지널 모찌롤'은 출시 1년이 다 되도록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모찌롤 제품은 지금까지 일본 제조업체로부터 70번 입고됐고, 현재까지 700만 개 이상 팔리며 CU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팀장은 그간 50여 개 제품을 들여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상품으로 태국의 모구모구 주스를 꼽았다. 해외소싱팀이 만들어진 뒤 성사시킨 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계약인 데다 지속적인 '거절'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태국 제조업체는 이미 한국에 판매 대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처음엔 CU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 팀장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생각으로 두 달 가까이 매일 전화하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성사시켰다"라며 "국내 대행사가 있긴 하지만 CU 점포에서만 팔겠다는 점을 강조해 설득에 성공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모구모구 역시 지금까지 170번 입고돼 700만 개 이상 팔리면서 '장수'하고 있다.

이 팀장은 그러면서 지난 2년간 겪었던 '고난'에 대해 언급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그간 팀원들이 한 해에 검토한 제품만 1000개가 넘는다. 상대업체가 거절하거나 내부적인 판단 등으로 수없이 무산된 끝에 시장에 나온 제품이 2년 여간 50개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팀장이 팀원의 요건으로 도전정신과 추진력, 분석력을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의사소통이 돼야 하니 영어 등 언어 능력은 기본"이라며 "제가 가장 우선해서 꼽는 조건은 거절을 당하더라도 여러 번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다음에는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추진력'도 겸비해야 하고, 상품에 대한 '분석력'도 필요하다"면서 "저를 비롯해 팀원들도 같이 잘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언어 능력, 그리고 도전 정신

일본 모찌롤이나 태국 모구모구 주스는 CU가 들여오기 전부터 이미 국내에서도 '여행 가면 사와야 하는 필수템'으로 알려진 제품들이다. 반면 최근 히트상품인 대만 대왕젤리의 경우 많은 이들에게 생소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해 들여온 제품이어서다. 이 팀장은 앞으로 이런 식의 '발굴'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 대왕젤리는 여행 필수템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 정도 사이즈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제조사가 없다고 판단해 들여온 제품"이라며 "워낙 제품이 커 친구와 나눠 먹는 디저트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스푼을 두 개 넣어서 팔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대만에선 이름도 '대왕젤리'가 아닌 '냉장젤리'라는 다소 '심심한' 이름으로 팔리고 있고, 스푼도 한 개만 달려 있다. 결국 해외 제품을 그대로 들여오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왕젤리의 경우 지난 3월 초 출시해 10일 만에 1차 입고분 18톤이 다 팔렸고, 2차로 140만 톤을 들여와 지금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팀장은 대왕젤리 '발굴'의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대왕젤리는 팀원 중 한 명이 대만 식품박람회 참석 차 출장을 가서 짬을 내 시장 조사를 하던 중 발견한 제품이다. 이 팀장은 "팀원이 거리를 걷다가 현지 분들이 '남 다른' 사이즈의 젤리를 먹고 있는 걸 보고 '저거 괜찮겠다'라고 판단했고, 제조업체와 접촉해 계약이 성사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발품 팔아 차별화 상품 발굴"

그는 이 사례를 들면서 '발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팀장은 "우리 팀이 해외를 많이 다니니 마냥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오히려 사무실에 있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해외에 가면 많이 걷고, 말도 많이 해야 해 출장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다"라고 했다.

이 팀장은 지금까지 여러 히트 상품을 냈지만 여전히 들여오고 싶은 제품들이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모찌롤처럼 다른 업체들이 들여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제품은 물론 대왕젤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 등 차별화한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시도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실제 해외소싱팀은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등에 재료로 쓰이는 채소 등을 직접 들여오는 역할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더 안정적으로 국내 제조 가공식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팀장은 "소비자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좋은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들여와 편의점을 자주 찾는 분들에게 계속 즐거움을 주는 게 저희 팀의 목표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며 "앞으로도 정말 들여오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더 치열하게 접촉하고 또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