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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혁신]'익숙함에서 찾은 특별함' 日 중소기업의 비책

  • 2019.06.07(금) 08:34

[창간6주년 특별기획]
日 대표 공업지구 스미다구의 기업 지원책
"새로운 것만이 혁신은 아냐…본질 지켜내야"

강 너머로 회색 빛 공장 지대가 보인다. 일본 도쿄타워와 함께 랜드 마크로 꼽히는 스카이트리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거리마다 소규모 공장들이 즐비하다. 도쿄 오오타구(大田区)와 히가시오오사카시(東大阪市)와 더불어 일본의 대표 공업지구로 꼽히는 스미다구(墨田区)다.

스미다구는 근대 이전 에도시대 형성됐다. 전통 공예 공방이 밀집했던 이 지역은 20세기 들어 섬유 의복 피혁 등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들어서며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견인했다. 총 면적은 14㎢. 1970년대 전성기 9700개 사업소가 이 지역에 운집했다고 하니 1㎢ 면적에 무려 700개 사업소가 빼곡히 모여있던 셈이다.

지금은 전성기와 비교해 다소 쇠퇴한 모습이지만 소규모 기업 수는 여전히 타 지역 대비 압도적이다. 일본에서는 제조업의 고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급격하게 바뀌는 시장 속에서 스미다구 기업들은 혁신을 일구고 있었다. 비즈니스워치가 지난달 29일 스미다구를 찾아 그 비책을 엿보았다.

스미다구 전경 [사진=스미다구 홈페이지]
쪼그라든 업황 속에서 캐낸 가능성

스미다구의 전성기와 후퇴기를 뚜렷하게 경험한 대표적 산업으로는 봉제 산업이 꼽힌다. 한때 '만들면 팔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이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국내 점유율은 3%대로 쪼그라들었다.

많은 봉제 기업이 도산 위기에 내몰리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던 터에 업력 40년을 자랑하는 봉제업체 '줌(Zoom)'의 카가무라 모토 전무는 6년 전 독특한 컨셉의 자사 브랜드 론칭을 결정했다. 이대로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위기 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브랜드 이름은 '잇초라(Ichora·一張羅)'. '한 벌밖에 없는 각별한 옷'이라는 의미다.

카가무라 모토 줌 전무가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도진 기자/spoon504@]

"봉제 산업이 쪼그라든 건 맞습니다. 사람도 공장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봉제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최근에는 유통 채널이 많아지면서 소비 행태도 다양해졌죠. 기회라고 봤습니다"

오랜 기간 위탁 생산에 주력해 왔던 회사는 브랜드 론칭을 위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기존 거래처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열도 북부에 위치한 아키타현으로 공장을 옮겼다. 효율적 운용을 위해 업무를 쪼개고 근무 시간을 유연화했다. 품질 관리에는 엄격했다.

브랜드를 론칭하자 사업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대형 업체로부터 디자인 협업 제안이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피트니스 복 제조 주문이 왔다. 지역 밀착 전략으로 매장 매출도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판매 채널 확장도 검토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데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정성의 결과는 무시하지 못합니다. 장인정신이라고 하면 거추장스럽고 가벼워보일 수 있지만 품질은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영역임에 틀림없습니다. 고객은 물론 종업원과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장 속 변화는 필수

스미다구 내 자사 브랜드를 론칭한 곳은 줌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스미다구 료고쿠 역에서 내려 거리를 걷다보면 작은 규모의 로드숍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이들 대부분이 스미다구 내 봉제 기업이 론칭한 매장이다.

일본 산업정책에 정통한 세키 미츠히로 히토츠바시대학 교수는 "스미다구 내 기업들은 디자인 염색 봉제 등 제작 전 과정에 거쳐 고품질을 추구하면서 자기 브랜드를 구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세키 교수는 이어 "사회 구조가 급격히 바뀌면서 과거 사업 모델을 고집할 수 없게 된 영향이 크다"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스미다구가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스미다구 정체성을 유지하되 시대에 뒤쳐지지 않도록 발전시킬 방법을 찾는 것. 특히 제조업은 기업 간 밸류체인이 형성돼 있어 한 회사가 무너질 경우 거래처 등으로 여파가 번진다. 도산을 막는 것이 과제다.

새로운 것만이 혁신 아냐…본질 속 '혁신'

하지만 스미다구가 기업에 직접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는 일. 스미다구는 융자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을 통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취업을 알선하고 후계자가 없으면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기업 활동을 돕기 위해 어렵게 고안한 정책들이다.

요시다 히데노리 스미다구 경영지원과 주사역은 "민간이 독창적 기술과 새로운 발상으로 기회를 찾아내면 정부와 학계 등이 협력해 그 비즈니스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존 사업을 재해석해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스미다구 거리 풍경 [사진=윤도진 기자/spoon504@]
요시다 히데노리 주사역(오른쪽)과 코바야시 히로아키 주사역이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도진 기자/spoon504@]

공예품 제조기업 '가타오카 병풍점'도 그 중 하나다. 주력 상품은 전통 병풍. 고리타분한 옛 것일 수 있지만 인테리어 용품으로 혁신적인 마케팅에 나서 유럽 판로 개척에 성공했다. 현재는 대학 측과 용도 확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종업원 5명 남짓의 작은 기업이 본업을 끈질기게 지켜낸 성과다.

"많은 기업가들이 경영 과정에서 규모 확대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 경우 추가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설비와 고용을 늘려야 합니다. 소규모 기업의 경우 여기에 드는 수고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본질을 지켜내는 노력 속에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이 혁신은 아닙니다"

혁신(革新). 묵은 제도나 관습, 조직이나 방식 등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치열한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왔고,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성장공식은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장이 아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비즈니스워치가 창간 6주년을 맞아 국내외 '혁신의 현장'을 찾아 나선 이유다. 산업의 변화부터 기업 내부의 작은 움직임까지 혁신의 영감을 주는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점. 그 시작은 '혁신의 실천'이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