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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모험' 없는 벤처투자, 바이오 생태계 '절벽' 부른다

  • 2025.12.13(토) 13:00

코스닥 상장·검증된 기업에만 투자 몰려
마른 초기투자, 바이오생태계 붕괴 시작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들의 투자유치 공시를 보면 묘한 이질감이 든다. 제 2의 알테오젠 혹은 에이비엘바이오 같은 혁신의 원석을 발굴해야할 벤처캐피탈(VC)들이 줄지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다. 기업들이 내놓는 보도자료도 복사해서 붙여넣은 듯 비슷하다. "바이오 전문 VC들이 회사의 기술력과 성장성을 인정한 결과"라는 것이다. 

자금 조달이 절실한 기업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에는 씁쓸함이 서려 있다. '모험 자본(Venture Capital)'이라 불리는 이들이 정작 '모험'이 사라진 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실종

벤처캐피탈은 시장이 외면하는 혁신의 불씨를 발굴해 마중물을 붓는 것이 설립 취지다.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원칙 아래, 원석에 불과한 초기 기업을 발굴해 유니콘까지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모태펀드로 벤처캐피탈에 막대한 실탄을 제공한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몇년전 기자와의 만남에서 "적당히 2~3배 수익을 노리는 것은 이 업의 본질이 아니다. 9곳에서 실패하더라도 잠재력 있는 한 곳에서 10배의 수익을 내는 것이 VC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리스크를 극도로 회피하는 '안전지향주의'가 업계 전반에 흐르고 있다. 최근 비상장 투자 역시 상장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매출이나 기술이전 실적이 있거나,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연구 계약이 가시화된 기업에만 돈이 몰린다. 사실상 '후기 라운드'에 가까운 투자다.

어느 정도 검증된 곳에는 '오버부킹'이 일어나 기업이 투자 기관을 밀어내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반면, 정작 수혈이 절실한 초기 기업은 고사 직전이다.

물론 벤처캐피탈 펀드에 돈을 대는 LP(유한책임출자자)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자본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손실에 대한 압박은 더 거세졌고 '수익률 방어'는 첫 번째 화두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투자하는 다수의 펀드는 어려운 리스크를 떠안고 생태계를 키우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태펀드 자금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초기 바이오텍은 너무 위험하다"며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 공공 자금이 들어간 펀드지만, 실제 운용 행태는 민간 사모펀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 벤처캐피탈사 심사역은 "상장사 메자닌(CB·BW) 투자로 수익률 방어에만 급급한 모습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무너지는 사다리, TIPS마저 외면하는 바이오텍

이러한 기류는 국가 창업 생태계의 보루인 팁스(TIPS) 프로그램에까지 전이되고 있다.

최근 TIPS 운영사들은 신약개발 스타트업 투자를 꺼린다. 개발 기간이 길고, 실패 확률이 높고, 후속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운영사는 "차라리 패널티(제재)를 받더라도 신약개발 스타트업은 안 하겠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2년간의 사투 끝에 첫 투자를 유치했다는 한 바이오텍 대표는 "이렇게 어렵다고 미리 알았다면, 창업 시점을 다시 고민했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생태계의 붕괴, 글로벌 신약강국의 허상

정부는 연일 '글로벌 신약 강국', '바이오 혁신 국가'를 외치지만 뿌리가 썩어가는 나무에서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금 초기 투자의 씨가 마른다는 것은 5년, 10년 뒤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미래 파이프라인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정작 생태계의 시작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부족해 보인다. 모태펀드와 각종 정책 자금이 정말 '리스크 머니'로 쓰이고 있는지, TIPS와 같은 제도가 바이오·헬스 분야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초기 단계에서 여러 번의 실패를 허용해 줄 자본이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얼마 전 신약 개발을 위해 창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 유명 의대 교수를 만났다. 기자는 응원 대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혹독한 보릿고개를 각오하셔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창업자에게 도전의 가치보다 생존의 공포를 먼저 말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했다.

지금 감수하지 않은 리스크는 몇 년 뒤 공허한 정책 구호와 황폐해진 생태계로 되돌아올 것이다. '모험' 없는 벤처투자는 당장의 수익률을 남길지 몰라도, 결국 우리 바이오 생태계를 절벽 끝으로 몰아가는 선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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