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K-바이오'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비즈워치는 신년기획으로 업계 최고경영자(CE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주요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상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본질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연락을 돌렸습니다. 경기 전망부터 투자 환경, 주목해야 할 연구개발 분야, 인력 및 정책 과제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해 꼼꼼히 물어봤습니다. 바이오 업계 리더들이 진단하는 2026년 K-바이오 산업은 어떨지 함께 보시죠. [편집자주]
국내 바이오 산업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뚜렷한 전환점을 맞았다. 단일 신약 파이프라인의 불확실한 성공 가능성에 기대 기업 가치를 평가하던 시대는 저물고, 확장 가능한 기술력과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갖춘 기업이 재평가받는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업계는 올해 독자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정책 변화에 따른 수혜가 기대되는 '바이오시밀러'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비즈워치가 국내 주요 상장·비상장 제약바이오 기업과 유관 기관 핵심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내 바이오 산업 관계자들은 '2026년 국내 바이오업계가 주목해야 할 기업'으로 이중항체 플랫폼 기업인 에이비엘바이오(14표)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주사 제형 변경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알테오젠(10표)은 3위,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기업인 에임드바이오와 리가켐바이오(각 3표)는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고, 국내 대표 바이오시밀러 기업인 셀트리온(11표)과 삼성바이오에피스(5표)는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빅딜로 기술 입증 '에이비엘·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에만 약 8조원 규모에 달하는 기술이전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시장에서 플랫폼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대세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회사의 핵심 플랫폼인 그랩바디(Grabody)-B가 있다. 그랩바디-B는 약물을 뇌혈관장벽(BBB)을 통과시켜 뇌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이중항체 기반 셔틀 기술로, 약물 전달 문제에 부딪혀 개발이 어려웠던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 질환 분야에서 높은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BBB 셔틀 기반 뇌질환 이중항체뿐 아니라 면역항암 이중항체까지 동시에 개발하며, 기술이 특정 질환에 국한되지 않고 신약 개발로의 확장 폭이 넓은 플랫폼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같은 기술 확장성은 글로벌 빅파마와의 반복적인 기술이전 계약으로 이어졌고, 플랫폼이 일회성 성과가 아닌 지속적으로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임을 확인시켰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제 기술이전에 의존하는 성장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수익을 기반으로 후기 임상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플랫폼 경쟁력을 토대로 오픈 이노베이션 성과를 이어나가며 신약 개발 전주기를 수행하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3위를 차지한 알테오젠은 플랫폼 기술의 성공 신화를 연 기업으로 평가된다. 알테오젠의 핵심 플랫폼은 투약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맥주사(IV)를 피하주사(SC)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환자의 투약 편의성 개선과 신약 개발의 비용·효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다수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2019년 글로벌 10대 제약사와 약 2조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이후 SC 제형 전환 플랫폼 관련 누적 계약 규모만 10조원에 달한다.
특히 기존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대상으로 반복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혁신 신약 개발에 비해 실패 위험이 낮고, 빅파마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가 분명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플랫폼의 사업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새로운 물질로 약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기존 글로벌 의약품의 가치를 재설계하는 기술인 셈이다.
업계는 2026년 이후 글로벌 연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들의 대규모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어 알테오젠의 SC 제형 전환 플랫폼 전략적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성공 기반…항체 치료제 개발 도전
2위와 4위에 오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경험과 상용화 역량을 갖추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체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이들의 사업 모델은 변동성이 큰 바이오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오리지널 의약품의 대규모 특허 만료가 다가오면서, 바이오시밀러 매출 확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또 국내외에서 바이오시밀러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이 강화되면서 성장 환경은 더욱 유리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고가 바이오의약품으로 인한 의료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바이오시밀러 도입을 촉진하고, 승인 절차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상호교환성 요건을 완화하는 등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국내 역시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바이오시밀러 기업의 해외 진출과 규제 대응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환경은 두 기업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모델을 통한 안정적인 매출 확보에 직접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두 회사는 항체 바이오시밀러의 글로벌 허가와 상업화 경험을 바탕으로, ADC 등 차세대 항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며 신약 개발과 기존 사업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확보한 막대한 현금을 신약 개발에 재투자함으로써 시장 점유율 확대와 혁신 가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에임드·리가켐, ADC 플랫폼 존재감
공동 5위를 차지한 에임드바이오와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차세대 항암 기술로 삼아, 플랫폼 중심의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ADC는 항체, 링커, 페이로드 설계 역량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고난도 기술로, 플랫폼이 검증되면 장기간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리가켐바이오는 핵심 기술인 '콘쥬올(ConjuALL)' 플랫폼을 통해 2016년 이후 약 10조원 규모의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글로벌 기술력과 사업성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일본 오노약품공업, 미국 퍼스트바이오 등과도 공동연구 및 기술이전을 체결하며 플랫폼 기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에임드바이오는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ADC 설계 역량을 활용해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2024년 베링거인겔하임과 약 1.4조원 규모의 ADC 후보물질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바이오헤븐에 'AMB302'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는 등 성공적인 기술수출 기록을 세웠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ADC 페이로드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플랫폼 기반 성장과 글로벌 기술 이전 성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두 기업 모두 ADC 기술을 기반으로 특정 파이프라인에 의존하지 않는 확장 가능한 플랫폼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업계는 이들이 차세대 ADC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장기적 성장과 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플랫폼과 시밀러, K-바이오 두 개의 답
이밖에도 이번 설문에서는 스파크바이오파마, 지투지바이오 등 다양한 플랫폼 기업들도 언급되며, 플랫폼 기반 기술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종합하면 올해 K-바이오 산업의 핵심 성장 동력은 플랫폼 기술과 바이오시밀러라고 볼 수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와 알테오젠처럼 확장 가능하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주목받고 있으며,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처럼 글로벌 시장 경험과 상용화 역량을 갖춘 바이오시밀러 기업 역시 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여기에 에임드바이오, 리가켐바이오처럼 차세대 항암 ADC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더해지면서 K-바이오는 기술력과 사업성을 동시에 갖춘 기업 중심의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국내 바이오 산업은 단순히 신약 개발에만 의존하지 않고, 확장 가능한 플랫폼과 글로벌 시장 경험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구조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며 "이런 기업들이 시장의 중심에 설수록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