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업계에 '오너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주요 제약사들이 잇따라 인사를 통해 오너 3세를 핵심 보직에 전진 배치하거나 승진시킴으로써 경영 입지와 책임을 한층 강화하면서다. 제약사 오너 3세들의 공통분모를 통해 제약기업들이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어떤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약업계에서 오너 3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지분 승계 방식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처럼 지주사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개인이 직접 이전받기보다, 오너 3세가 지배하는 비상장 개인회사를 매개로 그룹 지배력을 확대하는 우회적인 승계 방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개인회사로 지주사·사업회사 지분 확대
개인회사를 활용해 지주사 지분 승계가 이뤄진 대표적 사례로는 일동제약그룹 윤웅섭 회장이 꼽힌다. 윤 회장은 창업자 고(故) 윤용구 회장의 손자이자 윤원영 일동홀딩스(지주사)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 3세 경영인이다.
현재 일동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일동제약그룹의 IT 계열 비상장사 씨엠제이씨로, 지분 17.02%를 보유하고 있다. 당초 씨엠제이씨는 윤원영 회장의 개인회사로 출발했으나, 2015년 윤웅섭 회장에게 지분 대부분이 이전됐다.
윤 회장은 씨엠제이씨를 통해 차입과 주식담보대출 등을 활용해 마련한 자금으로 지주사 지분을 확대해 왔다. 아직 윤원영 명예회장이 지주사 지분 14.83%를 보유하고 있긴 하나 회사 지배력은 윤 회장의 개인회사를 통해 확보한 셈이다.
보령 김은선 회장의 아들이자 오너 3세인 김정균 사장도 개인회사를 앞세워 오너 3세 지배력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현재 보령의 최대주주는 지주사 보령홀딩스(29.62%)이며, 김 사장의 개인회사 보령파트너스는 지분 21.04%를 보유한 2대주주다.
비상장사인 보령파트너스는 2024년 보령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주요 주주로 본격 진입했다. 김은선 회장이 보령홀딩스와 보령 지분을 각각 44.93%, 8.3%를 보유하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김 사장은 개인 지분과 개인회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사업회사에 대한 지분 관여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종근당그룹에서도 개인회사를 활용한 '조용한 지분 축적'이 이어지고 있다. 오너 3세인 이주원 상무는 지주사 종근당홀딩스 지분 2.89%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생인 이주경 이사(2.55%), 이주아 씨(2.59%)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다만 이주원(40%)·이장한 회장(30%)·이주경(15%)·이주아(15%) 등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오너일가 가족회사인 벨에스엠의 최대주주(40%)로, 벨에스엠을 통해 지주사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벨에스엠은 지난해 24차례에 이어 올해 3차례 장내 매수를 통해 현재 종근당홀딩스 지분 0.36%를 확보했다. 오너 3세들이 개인 지분에 더해 오너일가 가족회사를 매개로 지주사 지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약품도 지분 승계에 오너 개인회사가 활용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국제약품의 최대주주는 지주사 역할을 하는 남영우 회장의 개인회사 우경(23.96%)이며, 다음으로 남 회장 개인지분 8.58%, 아들인 남태훈 부회장 2.12% 수준이다. 우경은 남 회장이 지분 85.43%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이밖에 오너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음에도 지분 승계 시기와 방식이 아직까지 불확실한 곳도 있다. GC그룹(녹십자홀딩스)은 오너 2세 허일섭 회장 아래에서 아들 허진성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본부장과 허진훈 녹십자 글로벌사업 알리글로팀장의 지주사 지분이 1% 미만에 불과하고, 조카인 허은철 GC녹십자 사장과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도 2%대 수준에 그친다.
제일약품 역시 한상철 사장을 중심으로 오너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했지만, 회사 지배력은 여전히 아버지 한승수 회장에게 집중돼 있다. 지주사 제일파마홀딩스 지분의 58%는 한 회장이 보유하며 그룹 전반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고, 한 사장의 지주사와 사업회사 제일약품 지분은 각각 9.7%와 0.6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인회사 통해 단계적 지분 확대…세금 부담 분산
오너 2세 시기에는 지주사 전환 자체가 지분 승계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됐다. 사업회사 지분을 개별적으로 이전하기보다 지주사 중심으로 지배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여러 계열사에 분산돼 있던 지배력을 한 축으로 정리,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주사 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 오너 3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지주사 지분 가치가 크게 상승하면서 개인이 직접 지분을 한 번에 증여 및 상속받을 경우, 세금 부담이 수백억원대에 달할 수 있다. 이에 개인회사를 매개로 자금을 축적하고 단계적으로 지주사 지분을 확보, 지배력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 직접 지분을 확보하려면 급여, 배당, 차입 등 특정 시점에 큰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개인회사를 활용하면 사업 수익, 배당, 누적 이익잉여금 등 법인 안에 상시적으로 축적된 자금을 기반으로 주가와 시장 상황에 맞춰 분할 매수가 가능하다. 또한 금융권 차입이나 주식담보대출 등 다양한 자금 조달 수단을 법인 단위로 구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지분 확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회사는 오너 3세에게 승계 과정에서 하나의 완충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지분 취득에 사용된 자금의 성격과 거래 조건에 따라 공정거래·상속·증여 관련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