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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문해력]그 많던 '세계 최초'는 왜 사라졌을까?

  • 2026.01.31(토) 10:00

크리스퍼 노벨상 기술 상용화까진 11년
'시간의 무게'와 '상업성' 허들 넘어야 

'수조원대 기술이전 계약'이라는 기사 헤드라인보다 중요한 건, 그 내용 속에 담긴 실질입니다. 쏟아지는 '세계 최초'와 '혁신'의 홍수 속에서 포장을 걷어내고 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냉정하게 독해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바이오 문해력을 키워드리겠습니다.[편집자주]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기술 세계 최초 개발", "암 재발·내성 원인 찾았다" , "알츠하이머병, 완치 길 열렸다"

가끔씩 뉴스를 장식하는 이런 타이틀, 우리에게 꽤 익숙합니다. 주로 국내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나온 초기 연구 성과를 다룬 기사들입니다. 제목만 보면 곧 암과 치매가 정복될 것 같지만, 3년, 5년이 지나고 나면 그 기술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을 듣기 어렵습니다. 그 많던 '혁신 기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는 연구실의 '발명'이 시장의 '제품'이 되기까지, 그 멀고도 험한 간극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결과입니다.

10년은 기본…상업화라는 '죽음의 계곡'

신약 개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실험실에서 나온 획기적인 데이터는 신약 개발이라는 긴 마라톤의 출발선에 불과합니다. 매력적인 신약후보물질이 싹을 틔우고(비임상), 나무로 자라(임상 1·2·3상), 열매를 맺기(품목허가 및 판매)까지는 평균 10~15년이 족히 걸립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는 피를 말리는 과정입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는 이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우수 인력을 확보해 연구개발(R&D)을 이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자금난과 임상 실패라는 벽에 부딪혀, 이른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살아남더라도 끊임없이 상업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안정적인 특허 기간 확보로 수익 방어가 가능한지 △기존 약물보다 효능이 월등해 시장 진입이 가능한지 △의사, 환자, 보험자가 선택할 만한 경제성이 있는지 등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량생산'과 '균일한 품질 관리(CMC)'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연구실에서 작동하던 기술이 공장에서 제품화되려면, 사실상 '다른 기술'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노벨상' 기술조차 피할 수 없었던 11년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예로 들어봅시다. 이 기술이 학계에 처음 제대로 보고된 핵심 논문이 나온 것은 2012년입니다.

세계가 열광했고 곧바로 노벨상까지 거머쥐었지만, 이 기술을 활용한 최초의 치료제(카스게비)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3년 말이었습니다. 1996년 개발된 1세대 유전자가위(징크핑거)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약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술조차 상용화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물며 일반적인 초기 단계의 연구 성과가 2~3년 내에 뚝딱 제품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출발선과 결승선은 다르다

문제는 연구 성과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복잡한 과학적 성과는 직관적으로 전달되기 어렵기에 언론도, 기관도, 때로는 기업도 '세계 최초', '혁신' 같은 단어로 요약하고 싶어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초 연구 단계'라는 기술의 현주소가 종종 지워지곤 합니다.

이러한 왜곡은 투자 시장에서 '가격'으로 번역됩니다. 특정 기업이 해당 연구와 연결돼 있다는 소식만 들려도 주가가 요동치기도 합니다.

물론 혁신적인 연구 성과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기술 개발은 '출발선'이고, 상업화는 '결승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주자를 보고 벌써 결승선을 통과했다고 환호한다면, 시장은 과열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화려한 수식어보다 기술의 '현재 위치'를 묻는 습관, 즉 '바이오 문해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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