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세계 제약 바이오 시장은 비만 치료제 '전쟁터'이다. 주사형 치료제의 잇단 흥행은 제약사의 매출 급증과 함께 글로벌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차세대 제품 개발 경쟁과 후발약·복제약의 가세, 적응증 확대까지 맞물리며 시장 구도는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비만 치료제 부상의 배경과 기술 경쟁, 가격·시장 변화, 치료 영역 확장 흐름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가 잇달아 대히트를 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가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꾸면서 시장 경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단일 호르몬에 기반한 기존 주사제의 한계를 넘어 효능과 투약 편의성을 높이려는 기술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다중 호르몬과 경구 제형, 복합요법 등 다양한 시도가 잇따르며 비만치료제 개발 전략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단일 기전에서 '다중' 경쟁
현재 주사형 비만치료제 시장은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중심이다. 최근에는 여러 대사 호르몬을 동시에 조절하는 다중 기전(작동 원리) 약물이 새로운 경쟁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 일라이 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제품명 마운자로·젭바운드) 등장 이후 본격화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과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펩타이드)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 기전을 기반으로, 임상시험에서 평균 약 20% 안팎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이 약물은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처방을 확대하며 그동안 시장을 주도해온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위고비와 함께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경쟁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다. 릴리는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조절하는 삼중 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를 개발 중이다. 초기 임상에서 약 24~25% 수준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노보 노디스크 역시 차세대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후보물질인 '카그리세마'는 GLP-1 작용제 '세마글루타이드'와 아밀린 유사체 '카그릴린타이드'를 함께 투여하는 병용 요법 기반 치료제다.
아밀린은 식후 췌장 베타세포에서 인슐린과 함께 분비되는 펩타이드 호르몬으로, 뇌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포만감을 유도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카그리세마'는 두 호르몬의 작용을 동시에 활용해 체중 감소 효과와 혈당 조절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특징으로, 회사는 연내 규제기관에 허가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일 분자 기반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또 다른 후보물질인 '아미크레틴'은 GLP-1과 아밀린 수용체를 하나의 분자로 동시에 자극하는 약물이다. 카그리세마가 두 약물을 병용하는 방식이라면, 아미크레틴은 하나의 분자가 두 호르몬 작용을 동시에 구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먹는 알약으로…'경구형' 본격화
투약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제형 혁신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대부분 주사제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복용 편의성이 높은 경구형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해 미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 기반의 경구형 비만치료제 개발 성과를 공개하며 경구 제형 경쟁을 촉발했다. 1일 1회 복용하는 먹는 임상시험에서 평균 16.6% 수준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으며 미국에서 지난 1월 '위고비 필(wegovy pill)'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주사제에 비해 효과는 다소 떨어지지만 직접 주사를 놔야 하는 부담이 없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비펩타이드 기반 경구 GLP-1 작용제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을 개발 중이다. 소화효소에 쉽게 분해되는 펩타이드 구조 대신 저분자 합성 물질(Small Molecule)을 적용해 위산에 의한 분해를 최소화했다. 경구 투여 시 약물 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로슈도 아밀린(amylin) 유사체를 기반으로 한 비만치료제 '페트렐린티드'의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차세대 기술 경쟁 동참
국내 기업들도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에 합세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조절하는 삼중 작용제 'HM15275'을 개발 중이다. 기존 비만치료제가 체중 감소 과정에서 근육량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한계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체중 감량 효과를 높이면서도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미약품은 작년 12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국내 허가 신청을 하면서 첫 국산 GLP-1 비만치료제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에서 HM15275의 임상 2상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기업 가운데 차세대 비만치료제 개발 단계도 가장 앞서 있다.
셀트리온은 GLP-1·GIP·글루카곤·아밀린을 겨냥한 4중 작용 기전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CT-G32'를 주사제와 경구제로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 효능 평가를 마치고 올해 상반기 임상시험계획(IND) 제출이 목표다.
디앤디파마텍은 다중 작용 기전에 경구 제형까지 결합하며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회사는 GLP-1·GIP 이중 작용 기전의 경구 후보물질 'MET-GGo'를 개발 중이며, 경구용 GLP-1 계열 파이프라인 'DD02S' 등을 통해 경구형 비만치료제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대웅제약은 약물을 피부에 붙여 투여하는 패치형 비만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며 새로운 제형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만치료제 시장은 이제 단순한 체중 감량 효과를 넘어 다중 호르몬 기전, 경구 제형, 복합요법 등 다양한 기술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향후 시장 판도 역시 이러한 플랫폼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