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세계 제약 바이오 시장은 비만 치료제 '전쟁터'이다. 주사형 치료제의 잇단 흥행은 제약사의 매출 급증과 함께 글로벌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차세대 제품 개발 경쟁과 후발약·복제약의 가세, 적응증 확대까지 맞물리며 시장 구도는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비만 치료제 부상의 배경과 기술 경쟁, 가격·시장 변화, 치료 영역 확장 흐름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비만 치료제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물에서 출발했다. 약물의 기반이 되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포도당 대사를 조절해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당뇨병 치료제로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높여 체중 감소를 유도하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 질환, 지방간, 수면무호흡증 등 다양한 만성질환 영역으로 연구개발이 확대되고 있다.
심혈관·지방간·수면무호흡 '영역 확대'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려다 비만약으로 전환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GLP-1 계열 약물 리라글루타이드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 약물을 빅토자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는 2009년, 미국에서는 2010년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이후 개발 과정에서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자 비만 치료제로도 연구를 확대했고, 그 결과물이 '싹 뺀다'는 별명이 붙었던 최초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삭센다다.
널리 알려진 '위고비' 역시 이러한 개발 전략 속에서 탄생한 제품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주 1회 투여하는 후속 약물 세마글루타이드를 2017년 오젬픽이라는 이름의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출시한 뒤, 비만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장해 2021년 위고비라는 제품명으로 다시 선보였다.
이후 GLP-1 계열 약물이 체중 감소뿐 아니라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추가 적응증 개발도 추진됐다. 그 결과 2024년에는 과체중 또는 비만 성인의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는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비만 또는 과체중이면서 심혈관 질환을 동반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에서 심혈관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 위험이 위약군 대비 약 20% 감소한 결과가 근거가 됐다.
위고비는 간 질환 영역으로도 적응증을 넓혔다. 위고비는 임상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의 지방간염 해소율이 62.9%로 위약군(34.3%)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간 섬유화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그 결과 지난해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 적응증도 추가 승인을 받았다.
후발주자인 미국의 일라이 릴리 역시 GLP-1 계열 약물인 티르제파타이드를 기반으로 적응증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약물은 2022년 미국에서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로 처음 승인됐으며, 이듬해 '젭바운드(Zepbound)'라는 이름의 비만 치료제로 허가를 받아 출시됐다. 국내에서는 '마운자로'라는 동일한 제품명으로 2023년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허가를 받은 후 다음해에 비만 치료 적응증을 추가로 획득했다.
젭바운드는 미국에서 2024년 비만 성인의 중등도~중증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OSA) 치료제로도 승인받으며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젭바운드는 임상 3상에서 기도양압 치료를 받지 않은 성인의 수면 중 호흡장애를 줄이는데 위약보다 약 5배 더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약품·디앤디파마텍 'MASH' 도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GLP-1 기반 약물로 단순한 비만 치료를 넘어 대사질환 전반으로 적응증을 확장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MASH(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hepatitis)' 치료제다. MASH는 비만과 당뇨 등 대사이상으로 간에 염증 및 섬유화를 일으키는 질환을 말한다.
한미약품은 MASH 치료제를 목표로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체중과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세 가지 호르몬 경로(GLP-1·GIP·글루카곤)를 동시에 표적하는 삼중 작용제로 현재 글로벌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 역시 GLP-1·글루카곤 이중 작용제 기반 후보물질 'DD01'을 MASH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미국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중간 결과에서는 12주 투여 시 지방간 감소율이 평균 6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유한양행과 대웅제약, 일동제약, 인벤티지랩도 GLP-1 기반 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 GLP-1 계열 치료제의 적응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 기업들의 개발 전략 역시 비만을 넘어 지방간 등 대사질환 전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사질환으로 영역 확장 가능성
비만 치료제는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실제 질병 위험을 낮추는 치료제로 진화하는 것은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지닌 특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GLP-1 수용체는 시상하부 등 뇌의 식욕 조절 영역뿐 아니라 간, 췌장, 심혈관계 등 다양한 장기에 분포한다. 이에 따라 식욕 억제와 혈당 조절은 물론 지질 대사 개선, 염증 감소 등 복합적인 대사 효과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치료제가 다양한 대사질환 영역으로 적응증을 넓혀갈 수 있는 근거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비만은 다양한 만성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비만 관련 합병증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 수면무호흡증, 신장 질환 등을 포함해 200여 가지에 이른다"며 "GLP-1 기전 약물이 현재 체중 감량 효과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심혈관 질환, 지방간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질환 영역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