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전통 제약사들이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대체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R&D 규모 확대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해왔다면, 최근에는 상업화 단계 진입과 수익성 환경 변화에 맞춰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긴 8개 상위 제약사 가운데 절반 이상은 R&D 비용 또는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을 낮췄다. 다른 기업은 오히려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선택과 집중' 전략이 뚜렷해지고 있다.
상업화 신약 역량 집중, R&D 속도 조절
대표적으로 유한양행과 대웅제약은 상업화 성과를 기반으로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유한양행은 2025년 R&D 비용을 전년 대비 264억원 줄이면서 매출 대비 투자 비중도 13%에서 11.1%로 낮아졌다. 지난해 폐암 신약 '렉라자(레이저티닙)'가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며 대규모 후기 임상 비용이 일단락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웅제약 역시 R&D 비용을 147억원 줄이며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을 18.5%에서 15.8%로 낮췄다.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펙수클루'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의 글로벌 확장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연구개발보다는 상업화 단계에 자원을 재배분하는 흐름이다. 특히 한올바이오파마, 대웅테라퓨틱스 등 자회사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R&D 부담을 분산하는 등 비용 관리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HK이노엔은 R&D 비용이 소폭 늘었지만 매출 성장 속도가 이를 웃돌면서 투자 비중은 1.0%포인트 하락했다. '케이캡'의 글로벌 확장에 주력하는 한편, 차기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를 위한 초기 임상 단계 투자가 이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GC녹십자도 R&D 비용과 투자 비중이 모두 감소하며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보였다. 백신과 혈액제제 등 기존 사업 경쟁력 유지에 집중하는 동시에 비용 효율화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광동제약은 매출 규모에 비해 R&D 투자에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낮은 투자 비중을 이어가며 기능성 음료와 일반의약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해 R&D 투자 비용과 매출 대비 투자 비중 모두 감소했다.
한미·종근당·보령, '포스트 신약' 향한 투자 확대
한미약품과 종근당은 R&D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R&D 비용을 전년대비 192억원 늘리고 투자 비중도 14.8%까지 끌어올렸다. 비만·대사질환 중심의 파이프라인 확대 전략이 핵심으로, GLP-1 계열 치료제와 차세대 다중작용제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종근당은 조사 대상 중 가장 큰 폭의 투자 증가(284억원)를 기록했다. ADC(항체약물접합체),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며 연구개발 체질 전환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보령은 항암제와 희귀질환 중심 포트폴리오 확대에 본격 나서면서 R&D 투자 비용도 전년 대비 131억원 늘었다.
숨고르기 vs 투자 확대…제약사 R&D 전략 양분
전반적으로 R&D 투자를 줄인 기업들은 상업화에 성공한 신약의 글로벌 확장과 수익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후기 임상 단계에서 발생하던 대규모 비용이 줄어든 데다 이미 확보한 제품 경쟁력을 시장에서 증명하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다.
반면 R&D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은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파이프라인 확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 비만·대사질환, ADC, 유전자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영역을 중심으로 신약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 상승과 해외 임상 비용 증가로 수익성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 제약사들은 무조건적인 R&D 확대보다 임상 단계와 사업 전략에 맞춰 투자 기조를 조정하고 있다"며 "상업화 단계에 진입한 기업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반면 일부 기업들은 파이프라인 확장에 나서면서 R&D 투자를 확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