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메르스·지카·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응 백신 개발 기업으로 주목 받았던 진원생명과학이 최근 수백억 원 규모의 손상차손과 자본잠식에 따른 거래정지 등 악재가 겹치며 재무·사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진원생명과학은 지난 7일 미국 자회사 VGXI에 대한 장기대여금과 미수수익의 회수 가능성을 재평가한 결과 803억원 규모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VGXI의 지속적인 영업적자와 재무구조 악화가 반영된 조치다.
VGXI의 재무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작년말 기준 부채(2265억원)가 자산(1267억원)보다 많은 완전자본잠식상태다. 작년 매출은 113억원으로 전년 213억원 대비 절반 가량 줄었고 순손실 416억원으로 전년 순손실 354억원 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이는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이 기대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원생명과학 역시 CDMO 수주 감소에 따른 매출 축소와 재무 부담이 겹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률 52%를 기록했다. 8일 주식 거래가 정지되며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 VGXI 인수 이후 CDMO 사업 전환
진원생명과학은 2008년 유전자치료제 및 DNA 백신 생산 기반 확보를 위해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VGXI를 인수했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필두로 CDMO 사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급성장하자 진원생명과학 역시 CDMO로 사업 전략을 전환했다. VGXI를 핵심 생산 거점으로 육성해왔다.
VGXI는 지난해 FDA의 GMP(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규제 검사를 통과하며 플라스미드 DNA(작은 고리형 이중가닥 DNA) 생산 품질과 공정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고객사의 생물의약품 허가(BLA) 절차를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러나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 10월경 VGXI는 자금 유동성 부족으로 텍사스 생산시설 가동을 일시 중단했고, 이 과정에서 직원 급여 지급 문제와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불거졌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자금 부족으로 운영을 중단한다'는 내부 이메일이 직원들에게 전달됐으며, 임금 체불이 발생하는 등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원생명과학은 이후 비상경영대책을 발표하고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과 VGXI 생산라인의 조속한 재가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생산 정상화와 신규 수주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숱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 역시 CDMO 사업에 뛰어들었음에도 수년이 지나도록 의미 있는 수주 성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업 신약 개발 동력 약화…재무 리스크 가능성
진원생명과학의 본업인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역시 사실상 동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메르스(GLS-5300)·지카(GLS-5700)·코로나19(GLS-5310) 백신을 포함한 전체 10개 파이프라인 가운데 8개가 개발 중단 또는 장기 보류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후보는 GLS-5140(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예방용 DNA 백신)과 GLS-8000(HBV 감염 예방 백신) 정도로, 전체 포트폴리오는 과거 대비 크게 축소됐다.
진원생명과학은 지난달 유상증자를 통해 약 81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며 CDMO 사업 확대를 통한 매출 기반 확보와 재무 안정화 전략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재무 구조를 감안할 때, 이번 자금 조달만으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매출 외형은 최근 수년간 매년 감소 추세인 반면 연간 400억~500억원대 순손실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작년말 기준 누적 결손금은 3000억원을 웃돈다. 자본이 빠르게 줄고 부채는 늘어나는 가운데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크게 상회해 단기 유동성 부담도 큰 상태다.
이와 비교하면 8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연간 손실 규모를 보전하기에 부족한 수준이다. VGXI의 생산 중단과 유동성 악화가 동시에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CDMO를 통한 현금흐름 창출이 지연될 경우 재무 리스크는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상장 유지 리스크까지 거론되면서 투자자 신뢰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VGXI가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CDMO 수주를 확보하고, 이를 실질적인 매출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진원생명과학의 중장기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