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조원대 기술이전 계약'이라는 기사 헤드라인보다 중요한 건, 그 내용 속에 담긴 실질입니다. 쏟아지는 '세계 최초'와 '혁신'의 홍수 속에서 포장을 걷어내고 바이오 산업의 민낯을 냉정하게 독해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바이오 문해력을 키워드리겠습니다.[편집자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기업가치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는 '기술이전'입니다. 글로벌 제약사가 선급금을 지불하고 권리를 가져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해당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외부 검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전만이 바이오 딜의 전부는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의 거래는 이미 단순 매각을 넘어 공동연구, 옵션 계약, 공동상업화 등으로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약은 처음부터 권리를 넘기지 않고 공동연구로 출발했다가 특정 데이터가 확보된 뒤 옵션 행사나 공동개발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계약은 후보물질의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를 함께 진행하며 비용과 수익을 나눕니다.
국내에서는 유독 공동연구를 기술이전 불발에 따른 차선책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연구가 기술이전보다 더 큰 성과와 수익을 가져온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권리 이전인가 가치 확장인가
기술이전은 '현재 확보한 가치를 파는 방식'이라면, 공동연구는 '가치를 더 키운 뒤 다음 선택지를 넓히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기술이전은 초기 바이오텍의 자금난을 해소하고 임상 비용 부담을 덜어주지만, 권리를 넘기는 순간 향후 발생할 막대한 상업화 이익(Upside)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반면 공동연구는 권리를 유지한 채 파트너사의 인프라와 노하우를 수혈받아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특히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는 초기 권리 매각보다 공동연구를 통한 데이터 확보가 향후 더 유리한 조건의 계약을 이끄는 전략적 디딤돌이 됩니다.
글로벌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공동개발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미 공동연구와 공동개발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머크(MSD)와 모더나의 협력입니다.
양사는 2016년 암 백신 공동연구로 시작해, 2022년 머크가 옵션을 행사하며 공동개발 및 상업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머크는 옵션 행사 대가로 2억5000만달러를 지급했으며, 양사는 세계 개발 비용과 수익을 동일하게 나누기로 합의했습니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협력 역시 2018년부터 이어온 mRNA 독감 백신 공동연구가 기반이 됐습니다. 버텍스와 크리스퍼테라퓨틱스의 유전자편집 치료제 '카스게비' 또한 바이오텍이 글로벌 상업화 권리의 40%를 유지하는 공동개발 구조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이는 공동연구가 단순한 협력을 넘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본격적인 거래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실질적 협력 가려내는 '옥석 가려내'
물론 모든 공동연구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업무협약(MOU) 수준의 발표와 실질적인 딜을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실질적인 연구비 지원 여부입니다. 파트너사가 R&D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계약인지가 핵심입니다.
다른 하나는 연구 범위의 구체성입니다. 특정 타깃이나 플랫폼 적용 범위가 명확해야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합니다.
후속 권리 구조도 들여다봐야 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라 옵션 행사나 공동상업화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텍이 데이터 접근권이나 원천기술의 권리를 얼마나 유지하는지도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얼마'보다 '어떻게'에 주목해야
기술이전은 분명 훌륭한 성과이지만, 권리를 보유한 채 글로벌 파트너의 역량을 끌어오는 공동연구 역시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닙니다. 특히 초기 파이프라인이나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는 공동연구가 기술이전보다 더 적합한 성장 경로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바이오 딜의 본질은 당장의 현금 유입보다 그 계약이 남기는 '권리와 선택지'에 있습니다.
누가 임상을 주도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성공 시 수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대한 답이 해당 기업의 진짜 경쟁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계약금 규모보다 그 계약이 열어줄 미래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