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염 변경 개량신약도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범위 내에 있다고 판결하면서 비판이 거세다.
국내 제약산업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부담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 등 공중의 이익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 내린 대법원에 비판 쏟아져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량신약과 특허도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선 대법원이 제약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제약업계는 개량신약이 제네릭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지희 한국유나이티드제약 IP팀장은 "개량신약은 신약에 비해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어 국내 제약업계 자본 규모와 기술 수준에 적합하다"며 "기술력을 강화해 제네릭 중심의 현 시장에서 개발 신약, 신약 중심의 선진시장과 같은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나이티드제약은 매출 대비 약 13%를 R&D에 투자해 클란자CR정, 실로스탄CR정, 칼로민정, 가스티인CR정 등 다수 개량신약을 개발해 러시아 등 42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김 팀장은 "복제약 위주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우리나라는 개량신약 시장 중에서도 걸음마를 뗀 상황"이라며 "특허 존속기간 연장이라는 이례적인 권리 연장제도에 있어 그 권리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면 특허도전 및 개량신약 개발에 있어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가의 오리지널 의약품만 판매 가능한 특허기간 중 저렴한 개량신약 생산을 활성화한다면 보험재정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화이자의 고혈압약 노바스크 특허 유효기간에 염 변경한 아모디핀이 발매되면서 4년간 약 490억원의 보험재정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도 "개량신약은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국내 중견 제약사들의 중요한 활로"라며 "개량신약도 R&D와 임상시험 등을 거쳐 신약 개발을 위한 기술축적 부분에서 중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엄 상무는 "해외에서도 오리지널 신약의 약가를 견제하고 보험재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이 권장하고 허가를 내주고 있다"며 "이번 판결로 개량신약 R&D가 주춤하고 발전을 저해한다면 세계적으로 내수 시장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이 갖는 의미는 오리지널의 독과점 행태를 깰 수 있다는 것"이라며 "향후 국내 제약사들의 특허도전 의지를 꺾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앞으로 판결 결과가 더욱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 건보재정 및 환자 부담 등 일반 공중 이익 박탈
법조계도 국내 제약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는 부당한 판결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건보재정과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등 일반 공중 이익을 박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여순 법률사무소 그루 변호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존속기간 연장제도의 효력 범위에 관해 최초로 내려진 판결"이라며 "이 사건과 동일 쟁점 사건만 약 170건이 계류 중으로 국내 제약업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솔리페나신과 비슷한 쟁점 사건으로 ▲프라닥사 14건 ▲포시가 63건 ▲자누비아 3건 ▲비리어드 19건 ▲젤잔즈 26건 ▲챔픽스 48건 등을 꼽았다.
그는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제네릭에서 신약개발로 전환하는 중간단계인 염 변경 의약품 개발이 막혀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국적 제약사들의 판매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 등 특허 공세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만 "치료효과 등 실질적 동일 요건 충족 여부를 따져볼 경우 개별적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정책 관점에서 입법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민 HnL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단순히 오리지널 의약품과 치료 효과가 동등 범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염 변경 의약품이 존속기간 연장 특허를 침해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고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유럽보다 더 강하게 존속기간 연장특허를 보호해 결국 오리지널 의약품 제약사가 이익을 얻고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출 및 환자 부담으로 돌아가는 등 일반 공중의 이익이 박탈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아직 신약을 개발하기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입장에서 염 변경 의약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며 "국내 약사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에서도 염 변경 의약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보건의료 정책적으로 보더라도 특허권 연장으로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 기간을 늘려 염 변경 의약품조차 출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패널로 나선 김상봉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개량신약 관련 허가제도 정책 변경은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정부가 개량신약에 대한 허가 프로세스를 기존과 같이 존중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