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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영캐주얼' NII도 매물로…흔들리는 패션업계

  • 2021.03.26(금) 16:35

SPA·명품·신명품 대두…중저가 영캐주얼 침체
브랜드 리뉴얼·온라인 집중 등 특단의 조치 필요

세정그룹이 22년간 키워온 '1세대 영캐주얼' 브랜드 'NII(니)'가 매물로 나왔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에 기반한 기존 영캐주얼 브랜드들의 부진이 심각해진 탓으로 보인다. 반면 온라인 시장으로 재빠르게 진입한 브랜드들은 코로나19에도 불구 성과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번 NII 매각을 계기로 패션업계의 판도가 재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 '1세대 영캐주얼' NII, 실적 악화에 매물로

세정그룹은 최근 자회사 세정과미래가 운영해 온 NII를 매각키로 했다. 매각 자문사는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다. NII는 세정그룹이 지난 1999년 외환위기 당시 론칭한 브랜드다. 합리적 가격대로 인기를 끌며 3년 만에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2010년 영캐주얼의 1차 침체기에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로의 리뉴얼에 성공하며 살아남았다.

세정그룹의 이번 결정은 세정과미래의 지속적인 실적 악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세정과미래는 오랜 기간 적자를 이어가다 2017년 14억 원의 흑자를 내며 자리잡는 듯 했다. 하지만 2018년에 52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9년에도 9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손실 폭이 커졌다. 같은 기간 매출은 799억 원에서 449억 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코로나19 사태가 있었던 지난 해에는 이 같은 손실 폭이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에서는 세정과미래가 아직 잠재력이 있는 브랜드인 NII를 매각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정그룹은 향후 웰메이드, 올리비아로렌 등 어덜트 패션 브랜드와 주얼리, 편집숍 등 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정그룹 관계자는 "NII는 그동안 쌓아왔던 고객층과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매각 후 리브랜딩 및 온라인 유통 전략화를 통해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정그룹은 어덜트 패션 브랜드와 주얼리 사업,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동춘상회' 등 신사업 동력을 집중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이중고' 영캐주얼 브랜드

업계에서는 세정그룹의 NII 매각이 영캐주얼 브랜드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저가 시장이 주무대인 영캐주얼 브랜드들은 오프라인 가두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사이 온라인 시장에서 유사한 콘셉트의 신규 브랜드들이 '가성비'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실제 NII와 유사한 가두점 중심 유통 전략을 가지고 있는 한세엠케이, 인디에프는 지난 한 해 어려움을 겪었다. 한세엠케이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28.4% 줄었다. 인디에프도 전년 대비 24.6% 감소했다. 반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론칭한 온라인 전용 브랜드 '텐먼스'는 목표 매출의 2배 이상을 달성했다. 기존 브랜드들이 온라인 전환에 주저하던 사이 대체재가 시장을 잠식해버린 셈이다.

메종키츠네 등 신명품은 영캐주얼 브랜드의 중고가 시장을 잠식했다.

오프라인 패션 시장이 SPA 등 저가 제품과 신명품(컨템포러리) 등 프리미엄 제품으로 양극화되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스파오·탑텐·무신사스탠다드 등 국내 주요 SPA 기업들의 매출은 평균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론칭한 톰브라운·아미·메종키츠네 등 신명품 브랜드는 전년 대비 39%, 159%, 100%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고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도 같은 기간 매출액이 65% 증가했다.

현재 영캐주얼 브랜드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는 신규 사업자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전면 리뉴얼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세정과미래는 재무적 상황이 악화돼 이에 필요한 인적·재정적 여력이 없다. 결국 세정과미래가 선택할 카드는 매각 뿐이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시장의 주축이 MZ세대로 바뀌면서 이들의 가치 소비 중시 트렌드가 시장 주류로 자리잡고 있어 영캐주얼 브랜드의 가치가 과거보다 좋지 않다"며 "NII도 리뉴얼을 통해 몇 년 동안 잘 버텨왔지만 결국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데다, 리뉴얼 할 시점이 도래했지만 재무구조 악화 탓에 시기를 놓치면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패션업계, 양극화 심화…생존 위한 변신 절실

업계에서는 패션업계의 양극화 심화로 업계가 전반적인 재편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중간 포지션에 위치한 영캐주얼 브랜드 대부분이 국산 브랜드라는 측면에서 업계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패션업계에서는 중견급 브랜드들의 수난이 이어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빈폴스포츠 철수를 결정했다. 코모도, 피에르가르뎅(여성복 부문), 화승 등은 사업을 중단하거나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이랜드그룹은 로엠, 미쏘 등 6개 브랜드의 매각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여의치 않았다. 이랜드측은 우선 실적을 개선한 후에 재매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강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우선 과감한 브랜드 리뉴얼이 선행돼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기존 브랜드들은 그동안 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앞세워 오랜 기간 사랑 받았다. 하지만 급변하는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여기에 브랜드 노후화까지 겹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MZ세대를 겨냥해 브랜드를 전면 리뉴얼하는 등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온라인 중심으로의 사업구조 개편도 숙제다. 여전히 온라인 시장에는 중저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다. 온라인 사업은 수요가 높은 제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등 유연한 운영 전략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더불어 온라인 부문 활성화를 통해 오프라인 재고 등 국내 패션 브랜드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영캐주얼 브랜드들도 온라인 전환 등 적극적 접근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새로운 브랜딩에 나선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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