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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회장의 못다 읽은 사과문

  • 2021.05.08(토) 11:00

[週刊流通]불가리스 거센 후폭풍…홍원식 회장 사퇴
폐쇄적 구조·안일한 시스템 탓…향후 대책은 '전무'

[週刊流通](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팀이 한 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週刊流通]을 보시면 한 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 '자식들' 앞에서 터진 눈물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남양유업이 출입 기자들에게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문자를 돌릴 때 직감했습니다. '아! 홍원식 회장이 물러나는구나'. 불가리스 사태의 후폭풍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보면서 그 방법 밖에는 성난 민심을 잠재울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남양유업이 꺼내들 수 있는 가장 큰 카드이기도 했고요. 아마 대부분의 출입 기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지난 4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홍 회장은 업계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통합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였을까요. 그동안 남양유업이 수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도 홍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문 경영인인 대표이사가 대신 나서 고개를 숙여왔습니다. 그랬던 홍 회장이 이번에는 단상에 섰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했다는 방증입니다.

카메라 앞에 선 홍 회장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초췌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유가공 기업을 이끌어온 오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제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상에 선 홍 회장은 마치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어르신의 모습이었습니다. 70대 어르신의 모습의 전형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저의 첫인상은 그랬습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홍 회장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 보였습니다. 자신의 회사가, 남양분유로 국내 유가공 업계에서 일가를 이뤘던 남양유업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홍 회장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준비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용은 누구나 짐작할만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런데 갑자기 홍 회장의 목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숨을 고르던 그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마치고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던 그는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대목에서는 결국 목이 메어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큰 한숨을 내쉰 홍 회장은 다시 한번 눈물을 닦았습니다.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겁니다. 아버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에도 좁은 집무실에서 책상과 4인용 소파만 두고 일해왔던 그입니다. 비서실도 두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품질에만 매달렸습니다. 선친의 유지인 무차입 경영을 지켜왔고 돈이 생기면 설비에 투자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남양유업의 히트작 모두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남양유업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공들여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이제는 내려놔야 합니다. 홍 회장의 눈물을 보며 잠시 가슴 한 켠이 뭉클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됐었나 봅니다. 특히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울먹이는 대목에선 홍 회장도 결국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봇물 터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홍 회장은 새롭게 태어날 남양 직원들을 믿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생각보다 사과문 내용이 짧아 현장에 나가있던 저희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원래 사과문 발표가 이렇게 짧게 잡혀있었냐고요. 그랬더니 "원래는 더 긴데 홍 회장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중간에 끊고 나온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홍 회장은 북받쳐 오르는 눈물 탓에 사과문을 다 읽지도 못하고 내려온 겁니다. 다시 한번 마음 한켠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 계속되는 '흑역사'

남양유업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동안 많은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한때는 국내 유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었지만 각종 사건 등으로 오점을 남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앞서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던 홍 회장도 개인적으로는 건설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남양유업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남양유업은 이제 과거에 비해 업계에서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상태입니다.

남양유업이 처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것은 지난 2013년 이른바 '갑질 사건'이었습니다. 지역 대리점에 이른바 물건 밀어내기를 강요하면서 본사의 갑질이 크게 이슈가 된 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남양유업 내부에서 있었던 각종 부당한 행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소비자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 일로 남양유업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남양유업의 히트작인 '아인슈타인 우유'는 DHA 함량을 과대광고해 홍역을 치렀습니다. 또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제품 '프렌치 카페'를 론칭하면서 인체에 무해한 카제인나트륨을 마치 유해한 성분인 것처럼 호도해 소비자들을 혼란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경쟁사 제품들은 인체에 무해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오인받아 업계 전체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죠.

이번에 문제가 된 '불가리스'와 관련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가 불가리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불가리아 국영업체의 라이선스를 받아 제조된 타사 제품에 대해서는 표절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죠. 가장 최근에는 경쟁사 제품을 허위 비방해 홍역을 치렀고 홍 회장의 외조카인 황하나 마약 사건 등 꾸준히 부정적인 사건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이렇게 남양유업의 흑역사를 정리한 것은 여기에 공통점이 있어서입니다. 남양유업은 이처럼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 홍 회장이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대표이사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남양유업은 누가 뭐래도 홍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홍 회장의 남양유업 지분율은 51.68%에 달합니다. 부인과 동생, 손자가 가진 지분까지 합하면 53.85%입니다. 

그럼에도 홍 회장은 지금껏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뒤에 숨었고 책임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졌습니다. 남양유업의 이사회 구성도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현재 남양유업의 사내 이사는 4명입니다. 그중 3명이 홍 회장 일가입니다. 홍 회장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장남인 홍진석 상무입니다. 전형적인 가족 기업이자 폐쇄적인 구조입니다.

◇ 날려버린 기회들…남은 과제는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남양유업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왔습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홍보실의 경우만 해도 최근 2~3년간 제 기능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전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윗선의 독선과 아집에 힘겨워했고 버티지 못해 회사를 떠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번 불가리스 사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홍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와 남양유업의 안일한 내부 시스템이 키워온 핵폭탄이 비로소 터진 사건입니다. 불가리스는 그 뇌관을 건드린 것이고요. 남양유업은 갑질 사태부터 최근의 불가리스 사태까지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변화를 약속했지만 약속은 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차버린 셈입니다.

이번 남양유업 사태는 기업이 제때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하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 불가리스 사태를 두고 소비자들이 "남양이 남양했네"하며 수긍하는 것도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실제로 홍 회장이 사퇴를 발표한 지난 4일 남양유업의 주가는 전일 대비 9.52% 올랐습니다. 시장에서도 남양유업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인식한 겁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남양유업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미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의 변신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홍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음에도 가장 중요한 '어떻게'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홍 회장은 여전히 남양유업의 최대주주입니다. 내부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계획도 없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사과와 변화 약속들과 이번의 사과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홍 회장이 못다 읽은 사과문에는 온통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며 수많은 대리점주와 남양 가족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거둬달라'는 부탁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홍 회장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사과문에 담았어야할 것은 부탁이 아닌, 그간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빠진 사과문은 그간 남양유업이 보여준 '허언(虛言)'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남양유업은 이번을 계기로 정말 변신에 성공할까요? 홍 회장이 보인 눈물은 정말 진실된 반성의 눈물이었을까요? 아니면 지금껏 그랬듯 '이번만 넘기고 보자'식의 임기응변이었을까요? 시간이 갈수록 남양유업을 향한 소비자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는 점을 홍 회장과 남양유업이 알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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