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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는 좁다"…오리온, '바이오' 선택한 속내

  • 2021.05.17(월) 10:06

중국 시장 유통망 앞세워 사업 개시
'바이오 플랫폼' 강화…개발 역량 확보 포석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오리온이 주력인 '제과'에서 벗어나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간편대용식·음료 시장에 진출한 데 이어 중국 바이오 사업의 첫 단추도 끼웠다. 오리온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 시장 내 유통 인프라를 활용해 바이오 제품을 안착시킬 계획이다. '바이오 플랫폼'을 육성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향후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 오리온의 '신사업 삼각편대'

오리온은 이달 초 지노믹트리와 대장암 진단키트 기술 도입 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노믹트리는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하는 체외 암 조기진단 키트 전문 기업이다. 오리온은 지노믹트리와 대장암 조기진단용 기술 사용권, 사업 진행에 따른 마일스톤, 매출 로열티 등의 사항을 합의했다. 앞서 오리온은 지난달 국내 백신 전문기업 큐라티스와 결핵 백신 기술 도입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오리온의 바이오 사업은 지난 해 10월부터 구체화됐다. 당시 오리온은 중국 국영 제약 기업 산둥루캉의약과 산둥루캉하오리요우 생물기술개발유한공사를 공동 설립했다. 오리온과 산둥루캉의약이 각각 65%, 35%의 지분을 투자했다. 오리온은 이 회사를 통해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조기진단키트, 큐라티스의 결핵 백신을 현지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오리온은 허인철 부회장 취임 이후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중국 바이오 사업은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강조해 온 3개의 신사업 중 하나다. 허 부회장은 삼성, 신세계그룹을 거쳐 지난 2014년 오리온에 합류했다. 그는 취임 직후 건설, 투자개발 등 부진한 사업을 정리했다. 이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간편대용식, 음료, 바이오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허 부회장은 이런 구상을 하나씩 현실화시켰다. 오리온은 2018년 ‘마켓오 네이처’를 론칭하며 간편대용식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9년 프리미엄 생수 '닥터유 제주용암수', 지난해 '닥터유 드링크 단백질'을 선보이며 음료 시장에도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허 부회장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해당 사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했다.

신사업이 안착하자 오리온의 수익성도 개선됐다. 오리온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756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10.2% 늘었다. 본업인 제과 사업 경쟁력도 잃지 않았다. 과자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오리온의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법인은 지난해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중국 시장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오리온의 핵심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리온이 바이오 사업의 첫 무대로 중국을 선택한 이유다. 오리온이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과 시장 내 확실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신사업 추진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바이오 유통 플랫폼' 거쳐 직접 사업 진출

오리온은 중국 시장에서 '바이오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잡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현지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내외 바이오 기업들과 협력해 바이오 산업에 필요한 기초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장기적으로는 합성의약품, 신약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오리온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중국의 바이오 시장 규모는 160조원에 달한다. 중국 경제가 지속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민 생활도 개선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중국 바이오 시장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 바이오 사업은 제과·식품 등 오리온의 기존 사업들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다. 오리온이 바이오 사업을 정착시킨다면 성장성과 시너지를 모두 잡을 수 있다.

다만 바이오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지난 2010년 한화케미칼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을 설립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개발했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판매가 부진해서다. 이에 한화그룹은 사업 진출 6년만에 공장을 매각하며 시장에서 철수했다. 롯데그룹, CJ그룹, 아모레퍼시픽 등도 중국 바이오 사업에서 쓴맛을 봤다.

오리온은 이들 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다. 사업에 실패시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다. 이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기도 어려워 단기간에 바이오 사업 전문성을 갖추기도 힘들다. 오리온이 중국 바이오 시장 공략 콘셉트를 '바이오 유통사'로 잡은 이유다.

오리온은 최근 지노믹트리와 대장암 진단키트 사업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오리온

유통망 확보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중국 사업 시작시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다. 반면 오리온은 중국 내 막강한 유통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바이오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다수의 바이오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또 오리온이 직접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만큼 손실 관리도 효과적이다. 파트너사와의 협업 과정에서 향후 직접 연구·개발을 진행하기 위한 기술과 노하우도 얻을 수 있다.

중국 바이오 사업의 첫 분야로 '대장암'과 '결핵'을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암 연구 저널에 따르면 1990년 10만명당 12.18명이었던 중국 대장암 발병 인구는 2017년 22.42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0만 명당 6.91명이었던 사망자 수는 13.24명으로 늘었다. 중국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식생활도 서구화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향후 대장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핵 역시 중국 정부가 주요 전염성 질병으로 지정·관리하는 병이다. 중국의 잠재 결핵 보균자는 3억5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노령화가 진행되면 결핵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결핵 백신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BCG만이 상용화돼있다. 오리온과 큐라티스는 청소년·성인용 백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이런 차별성을 앞세워 향후 높은 미래 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바이오 사업 초기에는 국내 우수 바이오 기업을 발굴하고 중국 진출을 위한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며 "오리온의 현지 시장 인프라를 활용한 플랫폼 사업을 통해 사업 역량을 키우고 향후 합성의약품과 신약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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