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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새 출발' 남양유업, 바뀔 수 있을까

  • 2021.06.07(월) 07:15

고강도 쇄신·구조조정 예상…사명 변경도 거론
"인적·물적 인프라 최고…이미지 회복이 관건"

남양유업이 창립 57주년만에 새 주인을 맞습니다.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시인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4월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잔인하게 느껴졌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남양유업입니다. 남양유업은 지난 4월 13일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이 발표가 이후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 발표의 후폭풍은 남양유업 창사이래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연구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세종공장 영업정지 처분 등 행정조치도 진행됐습니다. 가장 큰 타격은 소비자들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점입니다. 결국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은 사상 최초로 공개석상에 섰습니다. 그는 회장직을 내려놓고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홍 전 회장의 약속은 곧 지켜졌습니다. 남양유업 오너 일가는 보유 지분 대부분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추후 오너 일가가 지분을 되찾을 수 있는 '파킹딜'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는 오너 일가가 지분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뒀음에도 이 매각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남양유업 일가가 그동안 보여줬던 행태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상 파킹딜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앤컴퍼니는 인수 결정 직후 남양유업에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제도는 집행임원이 이사회로부터 업무에 관한 의사결정권과 집행권을 위임받는 제도입니다. 이사회는 집행임원의 업무를 감독합니다. 결국 남양유업이 겪어 온 논란의 중심에 '오너리스크'가 있었음을 한앤컴퍼니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양유업 내부 변화도 있었습니다. 남양유업은 매각 전날인 지난달 26일 조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기획마케팅·영업본부·전산보안팀을 총괄하는 수석본부장직을 신설했습니다. 대표이사는 미래전략·경영지원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가 축소됐습니다. 신임 수석본부장으로는 김승언 남양유업 기획마케팅본부장이 선임됐습니다.

이런 행보는 남양유업이 한앤컴퍼니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김 수석본부장은 남양유업 생산전략본부장, 계열사 건강한사람들 대표 등을 역임한 정통 '남양맨'입니다. 한앤컴퍼니가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할 경우 기존 '남양유업 라인'과 '한앤컴퍼니 라인'간 벌어질 갈등에서 남양유업 측의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은 오너 일가 지분을 한앤컴퍼니에 매각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번 조직 개편의 바탕에는 불안감이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를 새 주인으로 맞은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적 구조조정과 고강도 조직개편입니다. 물론 사모펀드들은 최근 들어 기업을 인수할 때 고용 승계 등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을 인수한 JKL파트너스, 맘스터치를 인수한 케이엘앤파트너스도 그랬죠. 한앤컴퍼니도 지난 2일 남양유업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당장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 정도일 겁니다.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 대부분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구조조정을 겪었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은 대주주 변경 1년만인 2019년 말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 440여 명을 줄였습니다. 맘스터치는 인적 구조조정은 없었지만, 메뉴를 줄이고 '붐바타' 등 사업의 힘을 빼며 사업 방향성을 바꾸고 있죠.

남양유업도 결국 일정 수준의 구조조정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식품업계가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도 저조한 실적을 냈습니다. 남양유업의 지난해 매출은 9489억원입니다. 11년만에 '1조 클럽'에서 탈락했습니다.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해 771억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한앤컴퍼니로서는 남양유업을 구조조정할 명분이 충분합니다.

물론 남양유업에게도 할 말은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경쟁사에 비해 우유와 분유의 비중이 높습니다. 우유급식 시장의 약 35%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분유 시장에서는 1위 사업자입니다. 이들 시장은 지난해 코로나19와 저출산 기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실적 타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난해 남양유업은 홍보대행사를 써서 경쟁사를 비방했던 사건이 밝혀지며 곤혹을 치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사과문에 "경쟁사의 목장이 원전 4㎞ 인근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사족을 달며 더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남양유업의 내부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거세지고 불매운동이 재점화된 것도 이 즈음부터였습니다.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의 이미지 개선과 실적 턴어라운드를 위해 내부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한 뒤 주요 보직에 영입 인사가 배치되고, 조직 구조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남양유업은 현재 전반적 상황도 좋지 않아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남양유업의 실적은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나아가 사명까지 변경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앞서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강매 사건 이후 논란이 이어지자 사명을 최대한 가려왔습니다. 로고는 작게 처리하고 빨대로 이를 가렸습니다. 건강한사람들, 백미당 등 계열사와 브랜드명에도 '남양' 브랜드를 전혀 어필하지 않았습니다. 자사 브랜드의 가치가 사실상 '제로'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이 사명을 바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오너 일가의 본관인 '남양 홍씨'의 상징이 담겨 있어 결국 무산됐지만요. 하지만 이제 오너 일가는 남양유업에서 물러났습니다. 더 이상 사명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어졌죠.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도 남양유업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사명 변경을 검토해 볼 만 합니다.

이제 업계의 시선은 남양유업의 미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남양유업은 숱한 논란에도 10년 가까이 1조 매출을 지켜온 기업입니다. 연구개발 및 품질 역량이 높습니다. 이미지 개선만 이뤄진다면 언제라도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한앤컴퍼니도 이에 주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의 인적·물적 인프라는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리브랜딩만 잘 되면 다시 좋은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사모펀드가 새로운 주인이 된 것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모펀드의 목적은 결국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재매각하는 것입니다. 재매각 시 외국 자본에 기업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앤컴퍼니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웅진식품도 대만 유통기업 퉁이그룹에 매각됐죠. 유업계 선두권 기업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남양유업이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면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남양유업은 수많은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부정적 이미지는 여전하고, 시장 상황도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57년 만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남양유업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그 변화가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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