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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롯데·CJ 인사 실험의 '혁신' 방정식

  • 2021.12.30(목) 06:45

직제 축소·계열사 이동 허용…"인재 유출 막기"
환영 속 부작용 우려도 커…관건은 '변화 관리'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유통업계의 연말 인사가 마무리됐습니다. 키워드는 '혁신'입니다. 특히 업계 선두 대기업 롯데와 CJ가 적극적입니다. 롯데는 계열사별 '이직'을 허용하는 '인커리어' 플랫폼을 내년부터 도입합니다. 부장·차장 직급은 하나로 합쳤습니다. CJ는 사장 이하 6개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로 통합했습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무한 경쟁 속 성장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인재 이탈을 막겠다는 구상입니다.

사실 이런 시도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방식의 직급체계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흔들렸습니다. 시장 환경의 변화가 빨라지며 경직된 의사결정 체계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경직된 인사 구조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불만도 높았죠. 때문에 기업들은 직급을 단순한 '연봉 책정 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로는 효율성을 높이겠다면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직급체계를 보완하기도 했죠.

유통업계도 비슷한 시도를 이어 왔습니다. 이번에 임원 직급체계를 개편한 CJ는 2000년대 초 '님문화'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 문화 구성이 목표였죠. 신세계는 몇 년 전부터 6단계 직급을 3~4단계로 줄였습니다. 직원 호칭은 '팀장'과 '파트너'로 통일했고요. 비슷한 시기 롯데백화점은 상품본부 직급체계를 한 단계 축소합니다. 영업본부의 '영업팀장' 직책을 없애고 매장 층별 '플로어장'을 도입했고요. 업무의 책임 강화를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올해의 직급체계 개편은 이전과 다릅니다. 수평적 문화와 책임 확대가 아니라 제도의 수평화가 목적입니다. 롯데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동안 롯데 직원의 계열사 이동은 회사가 결정했습니다. 구성원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죠. 반면 인커리어 제도는 각 계열사·구성원의 니즈에 따라 인사이동이 결정됩니다. CJ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원의 직책을 간소화한 기업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임원이 '한 덩어리'인 회사는 국내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이런 변화에는 시장 변동에 따른 '절박함'이 담겼다는 평가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유통업계의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커머스가 예상보다 빨리 대세가 됐습니다.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춘 기업만이 트렌드 변화에 대응했습니다. 반면 의사결정 속도가 느린 기업들은 대응에 실패했습니다. 성장은 정체됐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죠. 롯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CJ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빠른 의사결정 제도가 필요하고요.

직급체계 개편에 대한 직원 반응은 좋은 편입니다. 일단 직장 내 세대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예상이 많습니다. 특히 나이·경력에 따라 현실적 진급 상한선에 다다른 인원의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진급을 기대하기 어려워도, 성과만 낸다면 더 좋은 처우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더 열심히 일하는 '고참'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업무 노하우가 조직에 공유되고, 서로간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직급제에서 직원은 부품입니다. 큰 업무는 '팀'의 것이고, 팀원은 이를 구성하는 작은 업무를 담당하죠. 이 경우 낮은 직급이 맡는 업무는 단순합니다. 대부분 회의록·보고서 정리를 하게 됩니다. 직급이 낮으니 의견을 내기도 어렵겠죠. 직급제 폐지는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의사결정에도 속도가 붙을 겁니다. 이는 기업이 기대하는 직급체계 개편의 효과이기도 합니다.

그럼 좋기만 할까요. 아쉽지만 불만도 많습니다. 직장인에게 진급은 하나의 목표입니다. 회사 내 권한이 커질 뿐 아니라, 지갑에 꽂히는 월급부터 크게 오르니까요. 기업들은 이런 직급제의 구조를 동기부여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따라서 직급제가 폐지된다면 상응하는 보상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성과에 따라 보상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승진에 비해 성과에 따른 연봉 인상 폭이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승진은 일단 눈에 띕니다. 명함부터 바뀌니까요. 눈에 보이는 보상인 셈입니다. 하지만 연봉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직원 사이의 연봉 공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동료에게 자기 연봉을 오픈하는 직장인은 거의 없을 겁니다. 때문에 우리 팀원이, 경쟁자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경쟁을 요구하죠. 직원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경쟁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업무 의욕이 높아질 수 있을까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때문에 제도적 수평화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직급을 없애겠다는 '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입니다. 물론 기업의 의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것도 기업입니다. 실제로 KT·한화 등 기업은 직급제를 폐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활시킨 바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부작용이 직원 사기 저하를 불러온다는 판단에서였죠. 과감한 결심을 넘어 구체적이고 꾸준한 '변화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수평적 문화가 필요합니다. 제도는 '하드웨어'에 불과합니다. 문화라는 '소프트웨어' 없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일례로 많은 기업들이 직급제를 폐지했지만 내부에서는 그대로 직급에 따른 호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애써 만든 신규 인사체계를 '보여주기식'으로 전락시킵니다. 그만큼 직원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지겠죠. 직급체계 개편을 잘못 이용한다면 자칫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직급이 사라진다면 '직무'가 중요해집니다. '컨트롤 타워'가 약해지는 만큼, 개인이 업무를 완벽히 알아야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합니다. 주인의식도 강해져야 할 테고요. 이를 뒷받침할 사내 교육 등 지원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내 부하'가 아닌 이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줄 직원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보상을 더 확실히 하면서도, 이를 구성원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알리는 방법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해줘야 할 일입니다.

롯데·CJ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지금까지 내비친 변화의 의지도 큽니다. 롯데는 쇼핑HQ장과 백화점 대표로 외부 출신을 선임했습니다. 창사 후 이어져 왔던 '순혈주의'를 깨버렸죠. CJ는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유임시켰지만, 인수합병(M&A) 등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직급체계 개편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이들의 '인사 실험'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무릎을 탁 칠만한 혁신이 눈앞에 펼쳐질지 한 번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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