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직접 구매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신품종 시대'
대한민국 과일 시장의 역사는 '샤인머스캣'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까지 '신품종 과일'은 어디까지나 별미에 가까웠다. 마치 라면이나 과자 시장처럼 눈에 띄는 신품종이 나와도 반짝 인기를 얻을 뿐, 소비자들은 다시 '캠벨'로, '거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입에 꽉 차는 커다란 과육과 말 못할 달콤함, 아삭한 식감으로 무장한 샤인머스캣은 국내 포도 시장의 지형을 바꿔놨다. 한 송이에 2만~3만원을 웃돌 정도로 비싼 고급 과일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눈치 빠른 농가들은 재빨리 샤인머스캣 묘목을 들여왔다.
대형마트에서는 이제 캠벨이나 거봉을 찾아보기 힘들다. 온갖 지역의 샤인머스캣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17년 전체 포도 농가의 4%였던 샤인머스캣 재배 면적은 올해 44%까지 늘었다. 포도 농가 둘 중 하나는 샤인머스캣을 재배한다는 이야기다.

샤인머스캣의 인기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신품종이라면 아무리 가격이 높아도 팔린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과일 하나를 먹더라도 남들과 다른 개성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품종이라면 추가금을 지불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다른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들과 대형마트, 이커머스 등 기업들도 이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향·설화·금실·장희·킹스베리' 등 이미 마트에서만 십수종 이상의 품종이 팔리는 딸기와 밀감을 시작으로 '한라봉·레드향·천혜향·카라향' 등이 인기인 귤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도 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겨울 과일인 동시에 다양한 품종이 나오고 있음에도 결국 '돌고 돌아 순정'으로 돌아가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더 달거나, 더 크거나, 더 향이 좋은 만감류가 무수히 개발됐지만 '그냥 귤'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귤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껍질을 까기 힘든 신품종 귤들의 단점을 해결하는 동시에 높은 당도와 큰 과육을 구현한 품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SNS에서 '환타맛 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윈터프린스', 제주도가 아닌 내륙 충주에서 재배되는 '탄금향' 등이 그렇다. 이번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는 이 두 신품종 귤을 맛보기로 했다.
신상 귤 나왔습니다
국내 귤 시장에 '프리미엄화' 트렌드를 불러온 품종은 한라봉이다. 한라봉은 원래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청견과 병감 나카노 3호를 교배해 개발한 신품종인 '데코봉'으로, 국내엔 1990년대에 들어와 한라봉이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일반 귤과 달리 봉우리가 있는 독특한 모양이 '한라봉'이라는 상품명과 어우러져 고급 선물세트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레드향, 천혜향 등 다양한 프리미엄 품종이 개발됐다. 기존 밀감보다 당도가 높고 과육도 커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껍질이 얇아 까기가 어렵다는 점은 신품종 귤들의 공통적인 단점이었다. 밀감처럼 손으로 까다 보면 과육을 터뜨려 모양이 망가지고 과즙이 흐르기 일쑤였다.

이에 최근 인기 있는 신품종 귤들은 한라봉처럼 껍질을 까기 쉬운 품종이 많다. 과육과 껍질 사이에 공간이 있고 껍질 자체도 두꺼운 편이다. 그러면서도 만족스러운 과육 중량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크기가 크다는 공통점도 있다. [슬소생]에서 소개할 윈터프린스와 레드탄금향도 이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윈터프린스는 '환타맛 귤'이라는 마케팅으로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귤이다. 농촌진흥청에서 '하레히메'와 '태전 병감'을 교배한 신품종으로, 2020년부터 농가에 보급돼 판매가 시작됐다. 외형은 납작복숭아처럼 커다란 귤을 꾹 누른 것같이 위아래로 찌그러진 모양이다. 껍질이 두껍고 과육과 분리돼 있어 까기 쉬웠다. 마치 바람이 든 귤 같다는 인상이지만 실제 과육은 아무 문제 없이 촉촉하다.
다 까고 나면 크기가 아주 큰 귤이라는 느낌. 오렌지에 가까운 하레히메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맛이 많지 않은 단맛이다. 환타맛 귤이라는 별명도 이 산미 없는 단맛 때문에 생긴 것. 과육은 부드럽다. 크고 맛있는 귤이지만 또 크고 맛있는 귤 그 이상의 '킥'은 없다는 생각. 컬리 기준 1㎏ 4~6과에 1만7900원인데 그냥 감귤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될 수 있다.

'레드탄금향'은 제주도가 아닌 충청북도 충주에서 재배되는 레드향이다. 과즙과 향이 풍부하고 일반 귤보다 더 아삭한 식감이다. 한 손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크기와 한라봉 정도는 아니지만 꼭지가 살짝 튀어나와 있는 외형으로 다른 만감류와 차별화했다. 껍질이 적당히 두꺼우면서도 과육과 잘 분리되고 상큼한 향이 확 올라와 기분이 좋아진다.
레드향류답게 과육이 큼지막하고 아삭아삭한 씹는 맛과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과육의 식감이 일품이다. 다만 당도가 천차만별이었다. 1.2㎏(3과)을 구매했는데 셋 모두 당도가 일정치 않았다. 속껍질이 다소 두껍고 질긴 것도 약점이다.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당도가 낮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씨가 박혀 있는 것도 거슬린다. 1.2㎏ 가격은 2만5900원(컬리 기준)으로 제주산 한라봉이나 레드향, 황금향보다 비싸다.

돌고돌아 '귤'이라는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우리가 그냥 '귤'이라고 부르지만 이들 역시 수많은 돌연변이와 교배로 인해 태어난 언젠가의 '신품종'이다. 웬만한 매력으로는 소비자들이 수십년간 선택해 온 '그냥 귤'을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맛이 좀 덜 해도, 취향에 맞지 않아도 다양한 신품종을 맛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누가 알까. 나에게 딱 맞는 나만의 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