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유통업계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전환'이다. 인공지능(AI) 기술 확산, 글로벌 통상 질서 재편, 소비 패턴의 급변 속에서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CJ·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그룹·이랜드그룹 총수들은 신년사를 통해 공통으로 속도 있는 실행과 근본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2025년, 위기의 한 해
2025년은 어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유통업계 전체가 구조적 한계와 마주한 위기의 해였다. 글로벌 통상 질서가 흔들리고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소비 심리는 빠르게 위축됐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와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까지 겹치며 글로벌 확장 전략 역시 이전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변화는 유통 전 과정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기존 오프라인·플랫폼 사업 모델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외형 성장이나 점포 확장, 단기 판촉 중심 전략만으로는 수익성을 방어하기 어려워졌다. 주요 유통 대기업 총수들이 신년사에서 지난해를 '불확실성의 해'로 규정한 이유다. 이들은 일제히 성과보다 반성과 점검을 먼저 언급하며,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손경식 CJ 회장은 지난해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은 해"로 규정했다. 일부 사업 성과는 있었지만, 단기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고 중장기 경쟁력과 미래 성장 기반을 충분히 쌓지 못했다는 자성이다.
신세계 역시 성과보다 고통을 강조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2025년을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표현하며, 큰 점프를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과정의 해였다고 짚었다. 결과보다 결단과 체질 변화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성과가 위기를 상쇄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역시 지난해 지주사 체제 안정화, 일하는 방식 개선, 조직문화 정비 등 '기반 다지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2026년, 재도약의 해
2026년 유통업계의 화두는 명확하다. '속도'와 '고객', '실행력'이다. 유통업계 총수들은 한목소리로 지난해를 '준비와 점검의 해'로 이야기했다. 올해는 일제히 '실행과 도약의 해'로 규정했다. 위기를 통과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첫 번째 핵심 사안은 '속도 경쟁의 본격화'다. AI 도입, 글로벌 진출, 신사업 발굴 모두에서 2026년은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가 성패를 가르는 해가 될 전망이다. 전략의 차이보다 실행 속도의 차이가 기업 간 격차를 키우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CJ는 '빠른 실행'을 경쟁력으로 규정했다. 신세계는 '한 발 앞서, 한 박자 빠른 실행'을 '탑(TOP)의 본성'으로 정의했다. 롯데와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고객 가치의 재정의'다. 신세계는 고객을 "지독할 만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고 고객 욕구 자체를 재창조하라고 주문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시장의 트렌드를 보다 더 빠르게 읽고 고객의 입장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작은 불편까지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가격 경쟁이나 채널 확장이 아니라, 고객이 왜 선택하는지를 다시 묻는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세 번째는 말이 아닌 '실행으로 완성하는 혁신'이다. 롯데는 "계획과 실행의 간극"을 직접 언급하며 "강력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주문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불확실성이 커진 현재의 경영환경에서는 빠르게 시도하고 신속하게 수정, 보완하는 '기민한 실행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랜드는 조직 체질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속도와 실행
주요 그룹들은 이미 2026년을 대비하고 있다. CJ는 콘텐츠·물류·커머스 전반에 AI를 접목하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제작·유통·마케팅 전 과정에 AI를 활용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글로벌 시장 대응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신세계는 이마트 점포 확장 재개, 알리바바와의 협업을 통한 지마켓 경쟁력 강화 등으로 성장 시계를 다시 돌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강조한 '한발 앞서, 한 박자 빠른 실행'은 이미 점포 전략과 플랫폼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 역시 실행 속도를 높이기 위한 구조 정비에 나섰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롯데케미칼의 인도네시아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 구축, 롯데웰푸드의 인도 푸네 신공장 가동, 롯데리아의 미국·말레이시아 진출 등을 지난해 주요 성과로 언급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글로벌 사업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성과로 제시했다. 정지선 회장은 면세점의 디지털 워크 플레이스 구축과 홈쇼핑의 외부 협업 기반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를 언급하며, 조직 운영과 업무 구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외형 성장보다 내부 체질 개선과 운영 효율화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이랜드는 'BG(Business Group)' 경영 체제 전환에 나섰다. 유통과 식품을 분리해 각 영역에 책임 경영을 강화한 것은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시장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이번 대표이사 선임과 BG체제 전환은 오프라인 유통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적 개선의 일환"이라며 "각 사업 영역의 전문성을 강화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2025년은 유통업계가 그동안 미뤄왔던 구조적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해"라며 "대부분 기업이 비슷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2026년은 전략을 말로 설명하는 해가 아니라 실제 실행 결과로 평가받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