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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패션그룹' 형지의 잇단 외도…커지는 우려

  • 2026.01.27(화) 10:25

웨어러블 로봇·스테이블코인·화장품 동시 추진
스테이블코인 싱가포르 법인 7개월째 감감 무소식
신사업 기술 확보·대규모 투자 필요…실행력 의문

그래픽=비즈워치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남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이 본업인 의류 사업이 아닌, 이종(異種) 산업으로 손을 뻗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화장품,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요.

최 부회장은 그간 패션그룹형지의 근간인 의류 사업의 해외 진출에 집중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본업과 거리가 있는 신수종 사업으로 방향을 튼 모양새입니다. 국내 패션 시장이 인구 감소와 소비 양극화로 성장이 정체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의류 기업의 강점이 로봇 공학이나 금융 영역에서도 유효할지, 여러 신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의문도 나옵니다.

로봇·코인에 화장품까지

최 부회장이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신사업은 크게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화장품' 등 입니다. 특히 웨어러블 로봇 사업은 올해 들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최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형지엘리트는 지난 15일 로봇 전문 자회사 '형지로보틱스'를 출범했는데요.

형지로보틱스는 시니어 활동 보조 웨어러블 로봇과 워크웨어용 안전 로봇을 연내 상용화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형지엘리트는 로봇 기술 확보를 위해 국내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헥사휴먼케어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기술은 헥사휴먼케어가 담당하고 형지엘리트는 유통·생산을 맡는 구조입니다. 형지엘리트는 중국 로봇 기업 상하이중솨이로봇과도 협력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죠.

지난 14일 인천 송도 패션그룹형지 본사에서 열린 형지로보틱스 출범식에서 최준호 형지엘리트 대표이사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패션그룹형지

이와 함께 최 부회장은 스테이블코인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자산을 말합니다. 암호화폐의 변동성 문제를 해결한 결제 수단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데요. 그룹 내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선봉장은 형지글로벌입니다.

형지글로벌은 지난해 7월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기 위해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밝혔고요. 그룹 내 2000여 개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 자체 결제 플랫폼 '형지페이'를 개발하고 여기에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연계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 아비트럼 재단과의 협력도 발표했습니다.

최 부회장이 추진 중인 신사업에는 화장품 사업도 있습니다. 형지엘리트가 지난해 말 10대 청소년 타겟의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건데요. 형지엘리트의 교복 브랜드인 '엘리트학생복'에서 축적한 10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중국·일본·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도 내놨죠.

유기성 실종

최 부회장이 이렇게 신사업에 적극적인 것은 기존 사업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내 패션 시장은 인구 감소와 소비 양극화로 성장이 수년째 둔화된 상태죠. 반면 최 부회장이 주목한 사업들은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입니다. 최근 여러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을 선언하고 있는 분야죠.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고요.

실제로 웨어러블 로봇으로 대표되는 '에이지테크' 시장은 고령화와 돌봄 인력 부족 문제로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업용 안전 로봇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의 안전 투자가 늘면서 주목받고 있고요. 스테이블코인 역시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새로운 시장입니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시장인 만큼 패션그룹형지가 빠르게 시장을 선점한다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 부회장이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분야마다 무분별하게 손을 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신사업 모두가 패션그룹형지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형지가 지난 23일 ‘시니어 에이지테크 로봇 복지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 이남식 재능대학교 총장, 한창수 헥사휴먼케어 대표. / 사진=패션그룹형지

물론 패션그룹형지는 세 사업 모두 자사 '고객'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웨어러블 로봇은 패션그룹형지의 주력 고객인 시니어의 신체 활동을 돕는 사업이고요. 스테이블코인은 대리점의 결제 시스템을 고도화할 수단이며 화장품은 교복과 같은 10대 시장을 공략한다는 입장입니다. 전국 2000개 유통망도 세 사업 모두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하고요.

하지만 고객과 유통망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 세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각 사업에 필요한 핵심 역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화장품은 사업 영역이 완전히 다릅니다.

로봇은 하드웨어·기계공학 중심이고 스테이블코인은 소프트웨어·금융 중심입니다. 화장품은 제조·유통 중심이고요. 신사업에 필요한 인력, 파트너, 규제 환경도 각각 다르죠. 무리하게 여러 사업을 동시에 확장하다 보면 자원이 분산될 위험도 큽니다.

법인 설립도 아직

신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발표 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습니다. 형지글로벌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통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 디지털자산 보안기업 렛저 등과도 협력하겠다는 계획이었죠.

하지만 싱가포르 법인은 아직 설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DBS, 렛저 등과의 협력도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형지글로벌은 "파트너사들과 협의 중이어서 법인 설립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며 "의견을 청취·논의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준호 패션그룹형지 부회장(오른쪽)이 최근 오프체인랩스의 AJ 워너 최고전략책임자(CSO, 왼쪽)와 스테이블코인 기반 디지털 결제 인프라 개발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 사진=패션그룹형지

물론 형지글로벌은 최근 아비트럼 재단과의 협력을 발표하긴 했는데요. 아비트럼은 테더나 서클처럼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운영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블록체인 거래를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기술을 가진 곳이죠. 즉 형지글로벌과 아비트럼 재단의 협력은 추후 형지글로벌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이를 구동할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아비트럼을 활용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형지글로벌이 직접 발행·운영해야 하는데요. 여기에는 법정화폐 담보 관리, 준비금 운용 등 금융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이 분야는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도 핀테크 전문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패션 기업이 이런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향후 금융 전문 인력 확보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대규모 투자 필요한데

웨어러블 로봇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패션그룹형지는 올 하반기 출시를 염두에 두고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추진 중인데요. 패션 기업인 패션그룹형지는 로봇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기술 확보를 위해 여러 파트너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헥사휴먼케어와 중국 로봇 기업 상하이중솨이로봇과의 협력을 발표한 게 이런 이유에서죠. 핵심 기술 개발은 협력 기업들이 맡으면서 형지엘리트는 생산·유통을 우선 담당하게 될 전망입니다.

패션그룹형지는 패션 브랜드 대리점 2000여 개를 시니어용 로봇 판매·AS·교육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시니어 의류를 판매하던 매장이 로봇 판매·관리·사용자 교육까지 담당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 부호가 붙습니다. 대리점주 교육, 전문 인력 배치, AS 체계 구축 등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지엘리트는 "단순 유통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시장 적합성, 사용 환경, 유통 구조 설계 등 사업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30여 년간 시니어 의류를 만들며 인체공학적 설계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착용감이 핵심인 웨어러블 로봇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최준호 형지엘리트 대표(왼쪽)와 이병만 코스맥스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2월 8일 '형지엘리트-코스맥스 전략적 제휴 업무 협약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형지엘리트

패션그룹형지의 노하우가 일정 부분 로봇 설계에 활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로봇 기술의 핵심은 '공학의 영역'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핵심 기술을 보유한 쪽이 사업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습니다. 패션그룹형지가 웨어러블 로봇 사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이런 핵심 기술 역량을 자체적으로 갖춰야 하겠죠. 이를 위해서도 상당한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형지로보틱스는 현재 "신사업 초기 단계로 대규모 투자나 외부 차입 없이 그룹 차원의 신사업 리소스 범위 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로봇 사업은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상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자체 자금만으로 충분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업계에서는 패션그룹형지의 행보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패션 기업이 새 영역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는 의견이 공존합니다.

패션그룹형지는 "신사업은 독립적으로 추진되기 보다는 그룹사간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단계적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나가는 구조로 접근하고 있다"며 "속도보다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우선으로 하며 올 한해는 기반을 다져가는 단계"라는 입장인데요. 패션그룹형지의 신사업이 성공 모델로 평가받을지 무리한 확장으로 기록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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