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 A씨는 이커머스를 통해 냉동 밀키트와 과일 등 신선식품을 새벽배송으로 주문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문 앞에 놓인 택배를 가지고 들어온 A씨는 당황했다. 택배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아이스팩이 모두 녹아 미지근해졌기 때문이다. 서둘러 제품을 냉장고에 넣었지만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한낮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신선·냉동식품을 취급하는 이커머스도 비상이 걸렸다. 한밤중에도 26~27도를 웃도는 열대야에 보냉팩이 견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쿠팡의 프레시백이나 컬리의 퍼플박스 등 종이 박스보다 보냉력이 좋은 재활용 보랭백이 각광받고 있다.
녹으면 안 돼
'콜드체인'의 유지는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이커머스들의 고민이었다. 냉장차량의 보급과 새벽배송으로 배송 중의 콜드체인 유지엔 성공했지만 배송 후가 문제였다. 대면 배송이 중심이었던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한 밤 중 집 앞에 택배를 두고 떠나는 비대면 새벽배송이 주력인 곳들은 6~8시간 이상 상온에 방치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 한여름에는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를 넣어도 온도 유지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남는 게 없는' 새벽배송 시스템에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를 무한히 공급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커머스들이 '보랭백'을 개발한 이유다.
업계에서 재활용 보랭백을 가장 먼저 도입한 건 쿠팡이다. 쿠팡은 2020년 재활용 보랭백인 프레시백을 도입했다. 이전까지 스티로폼 박스로 배송되던 냉장·냉동 제품을 프레시백에 담아 배송했다. 보랭 효과가 높은 건 물론 스티로폼 박스 사용을 줄이는 친환경 효과도 우수했다.
단점도 있었다. 배송 기사가 하루 100~200건의 프레시백을 수거하고 세척하는 등의 부가 업무가 논란이 됐다. 지난 6월에도 전국택배노조와 참여연대가 쿠팡로지스틱스를 대상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프레시백이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프레시백은 보랭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단단한 벨크로를 사용한다. 여는 것부터 쉽지 않다. 여러 번 사용되다보니 외관이 지저분한 백도 많다. 담기는 게 대부분 '음식'인 만큼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라이벌 컬리는 다른 해답을 내놨다. 다회용 백을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는 동일했지만 이를 '공용'으로 풀지 않고 '개인화'했다. 소비자가 직접 보랭백을 관리하게 했다. 가정마다 보랭백을 갖고 있다가 상품을 주문하며 문 앞에 백을 내놓으면 기사가 그 안에 상품을 채우는 방식이다. 위생과 배송 퀄리티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서비스' 아닌 '상품'
문제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감수하게 할 것이냐다. 컬리는 이 역시 '컬리 식'으로 풀어냈다. 앞서 SSG닷컴은 개인 보랭백인 '알비백'을 3000원의 보증금을 받고 '빌려주는' 방식을 택했었다. 다만 알비백을 회수해 갈 경우 보증금은 환불된다. 사실상 무료다. 반면 컬리의 퍼플박스는 말 그대로 '유료'다.
컬리는 현재 퍼플박스를 1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50% 할인 쿠폰을 상시 제공하고 있어 사실상 7500원인 셈이다. 소비자들이 환경, 혹은 배송 퀄리티 향상을 위해 이 가격을 지불할까. 단순히 새벽배송을 받기 위해서라면 쉽지 않은 소비다. 하지만 실용적이면서도 에쁜 '아이스 백'을 7500원에 산다고 생각하게 한다면 다른 이야기다. 컬리가 퍼플박스에 공을 들인 이유다.
컬리를 상징하는 보라색과 연보라색을 조합한 퍼플박스는 다른 무료 프레시백과 만듦새가 다르다. 펼치면 35.8ℓ의 대형 아이스 백이지만 접으면 창고나 신발장 틈새에도 넣을 수 있게 부피가 줄어드는 접이식 구조다. 시중에 판매 중인 30ℓ급 보랭백이 보통 2만원대부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성비'가 좋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성능'이다. 종이 박스로 배송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면 굳이 돈을 들여 구매할 이유가 없다. 한낮 온도가 37도에 다다랐던 지난 5일, 컬리의 일반 종이 박스와 퍼플박스를 함께 두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양 쪽에 동일한 크기의 아이스팩을 3개씩 넣고 8시간 동안 현관 앞에 뒀다가 개봉했다.
먼저 종이 박스의 경우 아이스팩이 모두 녹은 건 물론 냉기도 전부 빠져나가 미지근한 상태였다. 신선식품이라면 조금 찝찝한 느낌으로 냉장고에 넣었겠지만 냉동 제품이었다면 사실상 '해동' 상태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퍼플박스는 아이스팩 1개는 얼음이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나머지 2개는 완전히 녹았지만 냉기가 남아 있었다. 박스 내부도 낮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현재 컬리는 퍼플박스 구매 이력이 있어야만 해당 방식의 배송을 신청할 수 있다. 따로 개인 보랭백을 등록한 뒤 사용할 수 있지만 과정이 다소 찾기 어렵다. 누적 구매 금액을 일정량 이상 채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확산을 유도할 수도 있다. 분리수거도 줄고 환경도 지키고, 보기에도 좋으니, 일단 한 번 쓰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