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 1일엔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마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재현 회장의 지배권은 급속히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원이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의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룹은 빚잔치 상황에 들어간다. 공중분해다.
그래서 그룹의 금융 계열사가 관심이다. 동양증권은 그 자체로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룹이 처한 위험을 온몸으로 떠안고 있다. 동양그룹의 비금융 계열사를 측면 지원한 문제가 커지는 모양새다. 어떤 충격을 더 받을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렵다. 법을 어겨가며 그룹 계열사를 지원한 내용이 드러나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될 공산이 크다.
동양증권을 당장 시장에 내다 팔기도 어렵다. 이미 우리투자증권이 매각 절차에 돌입했고, KDB대우증권도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잠재 매물로 보는 관측이 많다. 동양증권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엔 경쟁 여건이 호의적이지 않다. 동양생명의 사정은 조금 낫다. 그러나 조금 복잡하다. 사실상 대주주인 보고펀드가 다시 바빠지는 이유다.
동양그룹은 현재 동양생명을 계열사로 두고 경영권(이사회 9석 중 6석 확보)을 행사하고는 있으나, 대주주는 보고펀드다. 동양그룹의 생명 보유 지분은 3%에 불과하다. 2011년 그룹의 지분은 보고펀드에 넘겼다. 대신 지분 30%에 해당하는 주식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갖고 있다. 이 옵션의 행사기간은 내년 3월까지다.
그동안 동양그룹은 금융회사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해 말 그룹의 경영개선 및 사업 재편 로드맵에서도 금융과 발전•시멘트 사업 외의 계열사를 매각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룹은 보유 지분과 무관하게 회사가 보고펀드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동양생명 직원들도 거의 없다.
올해 보고펀드와 ING생명을 공동 인수하려 했던 것이나, 지난 8월 보고펀드가 제시한 계열분리를 전제로 한 ING생명 인수자금 마련 계획에 반대해 보고펀드의 계획을 무산시킨 것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통해 동양생명만큼은 버리지 않겠다는 오너와 그룹의 의지를 확인해왔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현 회장의 지배권이 사실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달 30일 동양생명은 이사 간담회를 열었다. 9명 중 8명이 참석했다. 1차 목표는 그룹의 불이 생명으로 옮겨붙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사명 변경과 계열 분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법률적 검토를 한다’는 내용을 신속히 언론에 알렸다.
그룹 추천 이사들이 다수 참여한 이사 간담회여서 현 회장의 의사도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현 회장과 그룹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사들이 공감대는 형성했을지는 몰라도 키는 현 회장이 쥐고 있다. 동양생명이 계열분리를 신청하더라도 법원은 그룹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여기서 ‘No’이면 계열분리는 안 된다.
사명 변경이나 계열 분리가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언론 플레이라 하더라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4월이면 현재의 경영권은 보고펀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판국에 동양그룹이 콜옵션을 행사해 경영권을 유지할 돈을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룹이 30% 지분을 다시 사오려면 연 11% 복리 수준의 금리를 물어야 한다. 주가로 추산하면 대략 주당 2만 3000~2만 4000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생명 주가는 1일 종가로 1만 250원이다.
이제는 어떤 방식이든 보고펀드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ING생명 인수 실패 후 잠시 주춤했던 보고펀드로서는 다시 지분투자 회사에 대한 새 판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내년 3월이면 보고펀드가 동양생명에 투자한 뒤 3년이 된다. 보통 펀드는 짧게는 3년부터 5년, 7년, 10년 시점에 엑시트(Exit)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고펀드 변양호 대표는 이와 관련해 “동양그룹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내년 4월 경영권이 완전히 넘어온 뒤의 문제에 대해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