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씨(가명)는 얼마 전 엉뚱한 계좌로 돈을 잘못 보냈다. 자신이 거래하던 농협은행 콜센터에 곧바로 신고했지만, 돈을 받은 쪽 은행으로 전화하는 게 빠르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돈을 보낸 쪽 은행이 신고를 접수해 처리해줘야 하는데도, 은행 콜센터에선 이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강 씨처럼 실수로 돈을 잘못 보내 속을 끓이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일단 돈을 잘못 보내면 되돌려 받기가 쉽지 않다. 내 계좌로 잘못 들어온 돈을 되돌려주는 것 역시 번거롭다. 지난 6일 출고된 [포스트]엉뚱한 계좌로 돈을 보냈다면?' 기사 댓글들을 위주로 사례를 재구성해봤다.
◇ 송금 실수 대충 처리하는 콜센터
돈을 잘못 보낸 고객들은 처리 절차를 잘 모르는 은행들 때문에 속이 탄다. 오연주 씨는 돈을 잘못 보내 해당 은행 콜센터에 연락했다가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다.
은행 창구에서 돈을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보냈기 때문에 처리해줄 수 없다는 것. 금감원에 따르면 송금 방식과 상관없이 돈을 보낸 은행이 반환 청구 절차를 처리해야 하는데도 현장에선 몰랐던 셈이다.
착오 송금액 반환이 권고 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어서 처리도 건성이다. 송금 실수를 한 윤소희 씨는 씨티은행 콜센터에 반환 청구를 신청했지만, 은행은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 받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돌려받기로 했지만 입금은 계속 미뤄졌다. 해당 은행에선 계좌주로부터 연락이 없다면서 무작정 기다리라는 답변만 들었다.
돈을 잘못 보낸 계좌가 압류통장인 경우엔 더 돌려받기 어렵다. 오성무 씨는 실수로 65만원을 누군가의 압류계좌에 보냈다. 압류계좌는 반환 청구로 돈을 돌려받을 수 없어 부당이득 청구소송을 낼 수밖에 없었다.
소송까지 냈지만 오 씨는 한 푼도 건지지 못 했다. 2~3달 동안 은행과 법원을 오가느라 시간만 허비했고, 소송비용으로만 12만원이 나갔다. 소송을 내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금감원의 조언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 잊고 지낸 통장인데…받은 사람도 고생
돈을 받은 사람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태준 씨는 자신의 계좌로 누군가 돈을 잘못 보냈다는 은행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거래하던 은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전화라는 의심이 들었다.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은 일당이 돈을 빼가려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알고 보니 입금된 계좌는 이 씨가 군 복무 시절 쓰던 통장이었다. 안 쓴 지 10년이 넘은 통장이라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던 이 씨는 당황스러웠다. 이 와중에 보낸 사람은 소송을 하겠다며 이 씨를 압박했다. 그가 괘씸했던 이 씨는 착오송금 반환이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냥 돌려주지 않았다.
김혜경 씨도 자녀의 졸업 후 잊고 지냈던 스쿨뱅킹 통장에 잘못 들어온 돈을 돌려주느라 고생했다. 자주 거래하지 않던 은행이라 집 근처에서 ATM을 찾기 어려웠다. 추운 겨울날 ATM을 찾아 헤맨 김 씨는 반환 이후 감기로 몸 져 누웠다.
◇ 송금 실수 막으려면 "금감원보다 앱"
금감원의 대응이 미적지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송금 실수를 처리해야 하는데도 개인들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말만 내놓고 있어서다. 송금 실수 피해 규모가 1800억원을 넘어선 만큼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금 실수를 막는 어플리케이션이 그나마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받는 사람의 계좌번호는 물론 이름가지 입력하는 방식이다. 기업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인 '아이원뱅크'은 이름을 잘못 입력한 경우 확인 메시지 창이 떠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다.
적은 금액을 보낼 때에는 토스 등 간편 송금 앱을 쓰면 된다. 길고 복잡한 계좌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불러와 송금할 수 있어서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