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로 대두한 급속한 인구 고령화 현상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된 '가계부채'의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과정을 겪지 않고 오히려 10년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이는 저금리 지속과 부동산 규제완화 등의 경제정책 기조와 맞물려 베이비붐 세대의 적극적인 차입 등 구조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완화하기 위해선 주택연금 제도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 고령화로 인한 베이비붐 세대의 차입증가 지목
한국은행은 22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매입 등을 위해 차입을 적극 늘리는 연령층(35세~59세)의 증가가 가계부채 누증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점도 구조적 증가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가구당 평균 금융부채 규모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는 5800만원, 여타 4400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50세 이상 연령층의 자영업 진출 증가와 임대주택 투자 확대 등으로 관련 부채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5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지난 2006년말 264만2000명에서 2016년말 316만2000명원으로 52만명이나 불어났다. 50세 이상 자영업자의 가계대출도 2012년말 63조원에서 2017년 3월말 98조2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60세 이상 가구주의 노후소득 확보를 위한 임대주택 투자 확대도 가계부채 증가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평균 수명 및 정년 연장 등으로 주된 직장에서 은퇴한 계층이 경제활동을 지속함에 따라 보유주택 처분 등을 통한 부채 디레버리징이 지연된 것도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주된 직장에서의 평균 은퇴 연령은 51.6세(통계청)이지만 실질은퇴연령은 72.9세(OECD, 14년 기준)로 늘어나면서 주택을 처분해 빚을 줄이려는 경향이 덜하다는 것이다.
또 가계가 투자자산으로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다 공급측면에선 임대주택이 가계 중심으로 공급되면서 관련 부채가 가계에 집중됐다는 분석도 내놨다. 최근 임대가구의 금융부채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특히 임대가구 중 투자목적 성향이 강할 것으로 추정되는 다주택 보유 임대가구의 부채 증가율이 전체 가구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해 추산한 임대가구의 금융부채는 2012년 179조5000억원에서 2016년 226조3000억원으로 26.1%나 증가했다.
한은은 "안정적 노후소득 확보를 위해 보유주택을 원활히 유동화할 수 있는 주택연금 제도를 활성화하고, 소유보다 거주중심 주택소비 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구조적 요인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금리 0.5%p만 올라도 고위험가구 부채 5조 증가
한국은행은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금융부채 보유가구 중 고위험가구가 지난 2015년 29만7000가구에서 31만5000가구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들의 금융부채 규모도 7조원으로 늘어나면서 총금융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은 62%로 확대됐다.
고위험가구는 위험가구 중 원리금상환부담이 크고 자산매각을 통한 부채상환능력도 취약한 가구를 말한다. 이들은 미국의 기준금리 등에 따른 국내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대출금리가 각각 0.5%, 0.1%, 1.5% 상승하는 경우 고위험가구는 2016년 현재 31만5000가구보다 각각 8000가구, 2만5000가구, 6만 가구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위험가구의 금융부채 규모도 현재 62조원에서 금리 상승폭에 따라 각각 4조7000억원, 9조2000억원, 14조6000억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경우 고위험 가구 수 및 부채가 비교적 크게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취약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