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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보험자율화 한다더니…당국 또 가격개입?

  • 2018.03.16(금) 18:03

금감원 "손해율 낮은 상품찾아 보험료 인하할 것"
자율화정책 후퇴 우려...'보여주기 소비자보호' 지적도

 

금융감독원은 최근 손해율이 낮은 보험상품에 대해 보험료산출 적정성을 집중 감리하겠다는 감독방침을 발표했다.

보험사가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지출된 보험금이 낮은 상품이 무엇인지 담보별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보험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당국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손해율이 높은 상품에 대해 보험료를 높이게 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 만큼 손해율이 낮은 상품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낮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감독당국은 손해율이 높은 보험상품들에 대해서만 보험료 적정성을 따져왔다. 대표적으로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을 들 수 있는데, 가입자가 많아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실손보험의 경우 병원진료의 비급여 항목이 늘어나면서 한때 손해율이 130% 이상으로 치솟았는데도 당국 제지에 막혀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인상하지 못했다. ‘국민보험’으로 불릴 만큼 많은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민원 등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당시 당국은 대부분의 실손보험이 종합보험이나 건강보험 내 특약형태로 들어있는 만큼 손실을 보지 않는 다른 담보들로 실손보험의 손실을 감내하라며 보험료 인상을 막았다. 이후 각종 손해율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손실을 떠안는 것은 보험사의 몫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논리를 폈던 당국이 이제는 담보별로 따져 수익이 나는 담보들에서 보험료를 낮추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일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도와 상관없이 보험상품의 가격에 개입하겠다는 의미여서 우려가 나온다. 특히 ‘보험자율화’ 정책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금 ‘보험료 인하’ 액션에 나선 것이다.

A라는 제조업체가 10%의 마진을 남기는 상품을 생산하다고 가정했을 때 마진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가가 낮은 재료를 사용하거나 공정의 단계를 줄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질 좋은 원재료 등을 사용해 마진을 줄이는 대신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회사와 소비자 선택의 몫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 같은 가격과 전략을 해당 회사가 아닌 당국에서 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보험업계로서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손보험에 대한 당국의 개입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일명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추진으로 비급여 항목이 줄어들 경우 보험사들이 반사이익을 누릴것이란 지적이 나와 정부차원에서 실손보험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은 소비자들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꼽힌다. 때문에 당국에서 공공연히 ‘가격’에 개입해 왔지만 ‘자율화’를 선언한 만큼 더이상 가격을 기준으로 산업발전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상품의 가격자율화 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명 당시에도 '자율화'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보험업계는 단 한번도 자율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상 자동차보험의 경우 선거 때마다 표심을 가져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선거를 앞두고 보험료 인하 압박이 계속되면 보험사들이 일제히 보험료를 낮추고 손해율이 높아지면 규제가 다소 느슨한 시기를 봐 조금씩 보험료를 높이는 식이었다.

2015년 금융권에 대규모 규제완화 바람이 불면서 보험상품 다양화와 선진화를 위한 ‘자율화’가 다시금 도입됐다. 보험업계의 기대감도 커졌고 실제 사전규제가 줄어들고 사후 감독체제로 바뀌면서 다양한 상품들도 개발됐다.

그러나 당국이 ‘소비자보호’를 내세우며 다시 규제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같은 움직임이 사그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보험료의 적정성을 따져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이것이 보험료를 책정하는 시스템의 적정성 여부에 맞춰져야지 ‘가격’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

보험료 인하는 분명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좋은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보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상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제한해 오히려 소비자들이 누리거나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수 있다.

국내 보험시장이 양적으로 이미 국제적인 궤도에 올랐음에도 질적 성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한 만큼 정부의 눈치를 본 금융당국이 점수를 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보험료 인하 카드를 꺼낸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이같은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국 스스로 정책의 일관성과 정합성을 세워야 한다. 말바꾸기,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피검기관인 금융사들의 불만만 키울 수 있다.

보험사들이 법과 규제를 벗어나면 꼼수를 쓰지 못하도록 강력히 제지하되 다양한 시도와 상품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조성해 줘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소비자 보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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