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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보험을 설계하는 사람의 호칭

  • 2020.10.19(월) 09:30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조선시대 서자(庶子)들에게 한(恨)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은 집을 떠나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제가 어찌 떠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란 말을 남긴다. 특정 인물을 호명하지 못하는 것, 특히 혈육관계에서는 더욱 큰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명을 쓰는 사람이 있다. 연애인 중 다수는 여러 이유로 본명이 아닌 예명으로 불리길 희망한다.

보험설계사 중에서도 다른 호칭으로 본인을 불러주길 원하는 사람이 다수다. 보험사 차원에서 다른 소속 설계사와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특정 영문 줄임말로 호명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외에도 스스로를 재무설계사나 자산관리사 등으로 알리는 일도 많다. 물론 이들 중에는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또는 공인재무설계사(AFPK) 자격을 갖춘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보험설계사 자격만을 갖춘다. 스스로를 내세우고 타인과의 차별화를 강조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보험 산업 내 대면채널의 이런 행동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잘못된 호칭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

최근 보험 방송과 금융 플랫폼에서 수집된 개인 정보가 보험 설계사에게 판매되는 문제를 조명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사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시청자가 상담전화를 걸 경우 본인의 개인정보가 상품화되어 보험대리점이나 설계사에게 판매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방송에 전문가라 소개되어 출연하는 사람들은 보험설계사다. 하지만 방송 그 어디에도 보험설계사란 호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공급이 수요를 창조하는지 수요자가 있기에 공급처가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보험을 주제로 한 유사 방송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송출되는 것은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의 숨은 목적이 신계약을 창출할 수 있는 고객정보 수집이기에 자극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특정 보험에 대한 단점만을 부각한 내용을 방송하면 당연히 해당 보험에 가입 중인 사람은 상담 전화를 걸게 된다. 이후 전문가가 상담 전화를 할 것이란 안내가 이뤄지고 시청자의 개인정보는 상품이 되어 꽤 높은 금액으로 설계사에게 공급된다.

가입 중인 보험이 정말 잘못되어 해지하고 다시 가입하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험사가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 대부분은 신계약 체결을 전제한다. 이 때문에 문제없는 계약도 단점만 강조되어 해지되기 쉽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쉽게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런 행위가 지속될 경우 보험 산업, 특히 설계사 중심의 대면채널은 소비자 신뢰를 잃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고객 정보가 상품화 되어 팔리는 이유는 보험 중개 시장의 포화 때문이다. 누구나 보험을 가입하고 있기에 기존 계약을 해지한 승환계약이 곧 신계약인 상황에서 보험을 가입시킬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사만 만나면 이전 계약을 모두 부정당한 소비자 경험이 증가한다. 이 때문에 보험설계사를 만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설계사라 부르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전 계약이 쉽게 부정되는 경험을 한 소비자는 설계사가 아닌 신뢰할 수 있고 객관적인 존재를 찾는다. 이런 이유로 본인의 개인정보가 상품화되는지도 모르고 방송이란 권위를 쉽게 믿는다. 다르게는 사람을 믿지 못해 금융플랫폼이 제공하는 보장분석이나 상담서비스를 활용해보기도 하지만 해당 서비스의 대부분도 고객 정보를 상품화하는 입구 역할로 전락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보험소비자의 피해는 확산되고 보험 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낮아진다.

보험 상품은 만들어진 공산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것은 곧 설계라는 과정을 통해 구성된 담보 조합을 구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목적물의 특성에 맞춰 필요한 보장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가 잘못되면 결국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보험을 설계하는 사람을 뜻하는 보험설계사란 호칭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스스로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금융 소비자에게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설계사란 호칭이 당당하게 호명될 수 있는 여건 조성은 스스로를 설계사라 부르는 것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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