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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첨병들]세무회계 '구글'을 꿈꾸다

  • 2020.10.15(목) 11:01

소상공인 전용 세무앱 '리드넘버' 이석민 대표
절세부터 시작해 신용평가·금융 확장 가능성도

이석민 리드넘버 대표는 세무사와 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활용할 수 있는 세무앱 개발을 위해 2018년 리드넘버를 창업했다.

소규모 공장과 스타트업이 모인 경기도 안양시 관양두산벤처다임 빌딩.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두리번하던 끝에 리드넘버 사무실을 찾았다. 구석진 모퉁이에 있어 손바닥만한 간판이 아니었다면 창고로 착각할 만한 곳에 둥지를 트고 있었다.

내부는 널찍했다. 책꽂이에는 '세법개론', '상속증여세 실무편람', '업종별 회계와 세무실무' 등 제목만 봐도 머리 아픈 세무서적과 '자바병렬 프로그래밍', 'HTML5', 'iPhone' 등 알듯 모를듯한 IT분야 서적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이석민(37) 리드넘버 대표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하다"라고 했다.

가장 어려운 게 뭐였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인력관리나 돈 문제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했다.

"저도 IT쪽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막상 해보니 세무와 개발은 너무 달라요. 세무사는 개발을 알아야 하고 개발자는 세무를 알아야 합니다. 쓰는 용어 자체가 다르니 의사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이걸 극복하지 못해 사라진 세무앱들이 꽤 될 겁니다."

2018년 창업을 하기 전까지 그는 삼일회계법인, 한영회계법인 등 내로라하는 회계법인에 근무했다. 직장생활 전 '사(士)'자가 들어가는 자격증을 둘(세무사, 회계사)이나 땄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2016년 3월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눈 앞의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했다.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처럼 그 뒤는 고난의 연속이다. 가족들의 반대를 넘어야 했고 사람과 돈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애써 뽑은 인재가 떠나갈 땐 가슴이 휑하니 뚫렸다. 지금도 사무실 책상, 의자, 모니터는 당근마켓에서 '득템'한 걸로 채워져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도 창고에서 시작했다. 그는 "세무회계 분야의 구글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리드넘버는 세무앱이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툴(Tool)을 제공한다. 한 번 등록하면 카드, 쇼핑몰, 배달앱 매출과 비용 등이 저절로 잡힌다.

세금은 매출에서 경비를 뺀 소득에 붙는다. 매출과 경비를 누락없이 챙기는 게 절세의 기본이다. 장사에 신경 쓰느라 자영업자 상당수는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신고를 세무사에게 맡긴다. 편의점·빵집·커피숍 등 전국의 수많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도 마찬가지다.

"세무사 사무실에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입력합니다. '휴먼에러(human error)'가 생길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세금을 덜 냈다며 가산세를 무는 경우도 생기죠. 우리앱을 쓰면 100%까지는 아니어도 휴먼에러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현재 1만 명이 리드넘버 앱을 쓰고 있다. 평균적인 절세액은 사업장 한 곳당 80만원 정도라고 한다. 서비스의 대부분은 무료로 열어놨지만 상담이 필요한 세금신고 기능은 유료로 운영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리드넘버 사무실은 상담전화로 바빴다.

돈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아직은 더 가야 한다"라고 했다. 유료회원이 있더라도 전체 직원 15명(세무사 및 회계사 3명, 개발 7명, 상담 및 신고 5명)의 월급을 대기엔 빠듯한 형편이다. 다행히 더벤처스·씨엔티테크·KB인베스트먼트에서 투자금이 들어왔다.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은 사무실과 운영비를 대며 후원군 역할을 맡았다.

이 대표는 세무앱 그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전국 소상공인 사업체 4만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67.2%가 정부의 자금지원을 희망했다. 55.7%는 세제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세금문제는 리드넘버로 보완할 수 있어요. 잘 몰라서 혜택을 못보는 부분을 잡아줄 수 있거든요. 문제는 자금융통, 곧 대출입니다. 소상공인이 대출을 받을 때 소득의 근거자료는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낸 것들입니다. 가게가 어려워 정부지원대출을 받고 싶어도, 더 낮은 금리에 빌려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지금은 1~2년 전 데이터밖에 활용을 못하는 구조입니다."

그는 "리드넘버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소상공인 대출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날마다 매출과 비용을 집계하는 특성상 정확한 소득증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차주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덜 수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세무앱에서 시작한 리드넘버는 소상공인 신용평가나 대출중개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그는 접촉하는 곳이 있느냐고 묻자 "모 카드사와 논의하기로 했다"라며 말을 아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해외시장도 눈여겨보는 중이다. 이 대표는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보다 페이를 더 많이 쓰고, 때마침 두나라 모두 세무회계전산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며 "전세계 자영업자에게 의미있는 앱으로 키우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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