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계가 은행장이 아닌 또다른 '수장' 선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달 은행권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금융노조 임원선거와 함께 일부 시중은행은 새로운 노조위원장 선출을 앞두고 있어서다.
관심은 새로운 노조 집행부의 성향이다. 최근 강성노조를 중심으로 처우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오는 15일 제27대 임원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6일 우리은행, 13일 한국씨티은행, 14일 하나은행, 23일 KB국민은행이 새로운 노조 집행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강성' 상징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연임할 듯
은행노조들의 상위기관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에는 현 박홍배 위원장이 단독 입후보했다. 금융노조 임원 선거에서 위원장 후보가 단독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와 함께하는 러닝메이트로는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이 수석부위원장, 김재범 금융노조 공공정책본부 부위원장이 사무총장 후보로 각각 이름을 함께 올렸다.
이번 선거는 박홍배 위원장이 단독 후보로 이름을 올린 만큼 과반 이상의 찬성만 얻으면 앞으로 3년간 금융노조를 한번 더 이끌게 된다.
금융권 사측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박홍배 위원장은 대표적인 강성 성향의 인사로 꼽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금융노조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을 지내면서 사측인 KB금융지주 및 KB국민은행과 갈등을 빚어온 인사로 꼽힌다. 때마다 지주 회장 연임을 반대했고, KB국민은행 총파업을 이끌기도 했다.
금융노조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6년만에 이뤄진 금융권 총파업이 대표적이다.
그가 내건 공약만 봐도 사측과의 대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직무성과급제 도입 저지 △주 4.5일제 도입 △은행점포폐쇄금지법 입법 추진 △공공기관 탄압 분쇄 및 자율교섭 쟁취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 지방이전 저지 △관치금융 부활 저지 및 금산분리 원칙 사수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폐지 등이 있다.
은행 관계자는 "내건 공약이 사측이 우선시 하는 경쟁력 강화와는 정반대의 노선"이라며 "직무성과급제 도입 저지,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폐지, 은행점포폐쇄금지법 입법 추진 등은 은행의 핵심과제중 하나인 CIR(영업이익경비율)을 개선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KB-하나, '강성라인' 이어갈까
은행권에서 강성노조로 꼽히는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노조는 이같은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KB국민은행은 류제강 위원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현업으로 복귀한다. 이에 새로운 위원장에 강윤성, 정덕봉, 문훈주, 현수철, 김정 등 5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다.
이중 문훈주 후보는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장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지난 3월 있었던 KB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KB금융 우리사주조합은 주주들의 가치 증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우리사주조합이 KB금융 지분률을 높혀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선전포고' 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나은행의 경우는 현 최호걸 위원장이 한번 더 연임에 도전한다. 여기에 더해 5명의 후보가 추가로 입후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최호걸 위원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호걸 위원장은 2019년 하나은행-외환은행 첫 통합위원장을 지내면서 양행 출신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인 하나금융과 하나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는 김정태 전 회장은 물론 함영주 현 회장의 선임에 연이어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사측과의 관계가 좋을리 없다.
하나은행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아직도 KEB하나은행지부라는 명칭을 공식 명칭을 사용할 정도로 사측과 골이 깊다"라며 "현 위원장이 연임한다면 노사화합의 장을 연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우리 노조…'강성'으로 갈아타나
우리은행의 노조위원장 자리에는 김창렬, 박봉수, 정종해, 신영균, 최인범, 이강산 등 6명의 후보가 입후보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직원 복지 위주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식휴가 확대, 통합창구 폐쇄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 노조 측은 그간 사측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잡음이 거의 없다시피 해 일각에서는 '어용노조'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우리은행 한 직원은 "사실 그간 노조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라며 "최근 터진 대형사고에 임원뿐만 아니라 노조 역시 성찰해야 하는데, 노조에서는 오히려 쉬쉬하며 엮이지 않으려는 모습만 보였다"라고 꼬집었다.
사측 입장에서는 노조측과 원만히 대화할 수 있는 위원장을 선호하겠지만 현재 내부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한 후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우리은행 직원은 "강성노조에 대한 시선이 안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 우리은행 노조는 너무 평화노선을 타고 있다"며 "특히 최근 내외부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노조부터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