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동업(同業)의 역사를 지나 ‘온리 원(Only One)’의 시대. 종합도료업체 삼화(三和)페인트의 75년의 사사(社史)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래서 삼화페인트의 지배구조는 갖가지 스펙트럼을 갖는다.
김-윤씨 창업주 집안이 동행에 마침표를 찍은 게 15년 전의 일이다. 뒤끝은 좋지 않았다. 양가(兩家)가 3년에 걸쳐 분쟁을 벌였다. 이제 삼화페인트는 3대 승계를 준비 중이다. 2대 경영자 김장연(65) 회장이 절대권력을 쥐기까지 여정에 시선이 꽂히는 이유다.
끌고 밀고…동업 김-윤 창업주의 동행
1946년 4월 고(故) 김복규 전 회장과 고 윤희중 전 회장이 의기투합해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페인트 공장 ‘동화산업(현 삼화페인트공업㈜)’을 창업했다. 삼화페인트의 출발이다.
끌고 밀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 관서페인트에 입사해 페인트 제조기술을 익힌 김 창업주가 생산·영업 현장을 맡았다. 일본 도쿄대 법대 출신의 윤 회장이 ‘2인자’로서 회계와 인사 등 관리를 담당하며 뒤를 받쳤다.
번창했다. 1960~197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주거환경 개선, 1980년대 올림픽과 신도시 건설, 자동차·전자·조선 등 제조업의 성장과 맞물려 호황을 누렸다. KCC, 노루, 삼화페인트, 강남제비스코, 조광 등 현 ‘페인트 5강’ 체제가 형성된 게 이 시기다. 1980년 2월 김 창업주의 회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윤 창업주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1990년대, 삼화페인트 오너 체제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1994년 4월 2대 경영자가 일선에 전격 등장했다. 김 창업주의 2남1녀 중 차남 현 김장연(65) 회장이다. 앞서 1993년 3월 김 회장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가업 승계 13년 만에 막 오른 2세 ‘1인 체제’
김 회장은 당시 37살의 이른 나이에 대표이사 사장에 앉았다. 영업담당 상무로서 유일하게 경영에 발을 들이고 있던 2세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26살 때인 1983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삼화페인트 기술부에 입사한 지 11년만이다.
반면 윤 창업주가 대표이사 회장 타이틀을 단 것도 이 때다. 아들과 함께 였다. 3남1녀 중 차남 고 윤석영 대표다. 고려대 출신으로 뒤늦게 38살 때인 1989년 총무부장으로 입사해 2세들 중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이다. 윤 대표 또한 당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김씨 집안의 후계자 김 회장과 윤 회장 부자(父子)가 공존했고, 이 체제는 10년간 이어졌다.
2003년에 가서는 2대 공동경영이 이뤄졌다. 같은 해 2월 윤 창업주가 당시 부사장으로 있던 차남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줬다. 별세 한 해 전이다. 짧았다. 윤 대표가 2008년 4월 58세의 나이로 작고하기 한 해 전인 2007년 3월 임기 만료와 함께 대표 자리에 앉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김-윤씨 공동경영 체제는 61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윤 대표가 고인인 된 이후 더 이상 윤씨 일가의 경영 참여는 없었다. 김 회장 1인 체제가 막이 올랐다. 부친의 뒤를 이어 가업을 승계한 지 13년만이다.
회계사 겸 변호사 오너 3세의 등장
김 회장은 현재 도료, 화학제품 제조, IT 분야 등에 걸쳐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공업용·건축용 도료업체인 주력사 삼화페인트공업㈜는 KCC(31%)와 노루페인트(20%)에 이어 도료업계 3위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16%(2021년 기준)다. 이밖에 삼화대림화학 등 국내 8개사와 중국, 베트남, 인도 생산법인 등 해외 9개사를 두고 있다.
총자산은 6120억원(2021년 삼화페인트공업㈜ 연결기준)이다. 김 회장이 사장에 오를 당시 855억원(1994년)에 비해 7배 불어났다. 매출은 550억원에서 6320억원으로 성장했다. 재무안정성도 비교적 양호하다. 작년 말 순차입금 1420억원에 순차입금의존도가 23.2%다. 부채비율은 106.8%다.
김 회장의 계열 장악력은 막강하다. 지주회사격인 모태 삼화페인트공업㈜의 최대주주로서 지분 27.03%를 소유하고 있다. 일가 2명을 합하면 28.84%다. 이게 다가 아니다.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일본 제휴선 츄고쿠마린페인트(7.94%)에다 자사주(13.28%)까지 더하면 50%가 훌쩍 넘는다.
반면 강력한 오너십을 쥐기까지의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윤씨 일가가 비록 경영에는 손을 뗐지만 지분마저 정리하고 떠난 게 아니어서다. 오히려 지분 유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29.54% vs 26.91%. 양가의 비슷한 분할 지분구조가 오랜 기간 이어졌던 이유다.
이렇다 보니 2013년 4월 삼화페인트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당시 김 회장이 100억원어치 신주인수권(워런트)을 사들이자 윤씨 가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3년여에 걸친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다. 김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동업 정신은 얼룩졌다.
이제 김 회장에게 화두는 대물림이다. 3대 승계가 수면으로 떠오른 상태다. 1남1녀(정석·현정) 중 맏딸 김현정(37) 상무가 먼저 얼굴을 비췄다.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다. 승계 지렛대로 요긴하게 활용할 카드도 소리 소문 없이 하나 준비했다. (▶ [거버넌스워치] 삼화페인트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