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해 STX와 동양그룹 사태를 겪었던 금융당국은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는 대기업들의 정상화를 통해 금융시장 불안요인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동부와 현대그룹, 그리고 한진그룹이 지목됐다. 동부그룹이 가장 먼저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고, 현대와 한진이 뒤를 따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선제적 구조조정' 효과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해당그룹들이 처한 상황이 역시 달라졌다.
◇ 동부, 철강·반도체분야 해체
가장 먼저 자구안을 발표했던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은 당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당초 의도했던 구조조정보다 더 강도높은 작업이 진행됐고, 결국 동부는 철강사업의 기반을 잃었다.
인천공장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정상화를 추진했던 동부제철은 최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김준기 회장은 감자를 통해 경영권을 잃었다. 채권단 주도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패키지 매각을 추진하다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동부하이텍 매각은 IA컨소시엄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상태고, 패키지 매각이 좌절된 동부당진발전은 최근 SK가스가 인수하기로 결정됐다. 당초 기업공개를 추진했던 동부특수강은 현대제철에게 매각될 예정이다.
아직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메탈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동부메탈 매각은 속도조절에 들어간 상태고, 인천공장은 매각작업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당초 구조조정 계획이 크게 어긋나면서 동부그룹은 지난 1년간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다른 그룹들과 구조조정의 속도나 성과가 비교됐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채권단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동부그룹에게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상처가 크게 남았다. 동부 제조계열사로는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동부건설 정도가 남았다. 앞으로 금융계열사 중심의 사업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평가다.
◇ 현대, '급한 불은 껐다'
현대그룹도 지난해 12월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와 현대상선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각종 자산 등을 매각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 매각은 일단 미뤄진 상태지만 당초 계획과 비교하면 85% 수준을 달성했다는 평가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의 연결고리였던 현대로지스틱스를 일본 오릭스에 매각한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당초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상장을 추진했지만 지분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던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도 완성했다.
현대글로벌과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도 높아졌다. 과거 쉰들러와 경영권 갈등을 겪었던 사례가 재연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다.
구조조정 결과 현대그룹의 부채비율, 유동성 등 지표가 개선되며 '급한 불은 껐다'는 관측이다. 다만 과거보다 성장기반이 약해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아직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해운업종에 대한 정책적 지원 등을 확대해 선제적 구조조정 결과가 빛을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 한진, '한방'이 통했다
한진그룹 구조조정은 별다른 잡음없이 진행됐다. 동부나 현대와 달리 채권단의 관여도 거의 받지 않았다. 바로 에쓰오일 지분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도 지난해 에쓰오일 지분매각을 포함한 3조5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다. 이중 에쓰오일 지분의 가치만 2조2000억원으로 평가됐다. 부동산과 노후항공기 매각도 진행됐다. 당시 독립경영을 하던 한진해운도 2조원에 육박하는 자구안을 내놨다.
한진은 지난 7월 에쓰오일 대주주인 AOC(Aramco Overseas Company)에게 보유하고 있던 에쓰오일 지분을 약 2조원에 매각했다. 한진해운 전용선 사업부문을 매각해 약 1조6000억원의 유동성도 확보했다.
특히 한진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독립경영체제에 있던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가져오며 '육·해·공' 물류채널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조수호 회장이 타계한 후 최은영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면서 한진그룹이 유동성지원에 나섰고, 결국 최 회장은 경영권을 조 회장에게 넘겼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 주력계열사의 상황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경영환경이 개선되면서 영업이익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한진해운도 조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서며 적자에서 벗어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