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시멘트 기업들이 M&A 매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규제 완화로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덩달아 시멘트 기업들의 상황도 나아지자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인수전이 치열하다. 국내 시멘트 시장의 오늘과 내일을 살펴본다. [편집자]
동양시멘트에 이어 시멘트 시장 점유율 1위인 쌍용양회가 M&A 시장에 등장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쌍용양회의 공개매각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한일시멘트를 비롯한 사모펀드(PEF) 등이 쌍용양회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멘트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만큼 쌍용양회를 가져가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매각 결과에 따라 시멘트 시장 재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쌍용양회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쌍용양회 최대주주이자 그동안 쌍용양회를 경영해 온 일본의 태평양시멘트가 반대하고 있는 까닭이다. 태평양시멘트는 쌍용양회 지분 32.36%(특수관계인 TCC홀딩스 지분 포함)을 확보하고 있다.
◇ 태평양시멘트가 되살린 쌍용양회
외환위기 당시, 쌍용양회는 쌍용그룹 자동차사업 투자 실패 등의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외자유치 도입을 적극 추진했고,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의 태평양시멘트는 쌍용양회에 투자한다.
태평양시멘트는 2000년 9월, 1차로 쌍용양회에 3650억원(350억엔)을 투자하기로 하는 지분투자 약정을 체결했다. 같은 해 10월 약정에 따른 출자를 이행해 쌍용양회 지분 29%를 확보해 대주주가 됐고, 공동 경영에 들어간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채권단의 ‘부실기업 퇴출판정 결과’ 발표에서 신규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판정유보’ 기업에 쌍용양회가 포함되며 다시 한 번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태평양은 2차로 약 3000억원의 전환사채(CB) 매입 등을 통해 또 한 번 지원에 나섰고, 쌍용양회에 대한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쌍용양회는 2005년이 돼서야 경영이 정상화돼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 등 4개 채권금융기관 주주들로 구성된 출자전환주식매각협의회(지분율 46.83%)가 구성됐다. 협의회는 태평양에 대해 쌍용양회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일정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했다. 이에 더해 태평양시멘트의 경영권 유지를 인정했다.
최근에 발생한 대립은 지난 2005년 당시 부여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둘러싸고 시작됐다.
협의회 주관은행인 산업은행은 우선매수권 행사 가격과 매각 지분 범위 등을 두고 태평양시멘트와 협상에 나섰지만 이견이 발생했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결국 공개매각으로 전환했다. 또 쌍용양회 경영권 확보를 위한 이사를 추가로 선임하기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했다.
이를 막기 위해 태평양시멘트는 소송카드를 꺼내들었다. 태평양시멘트는 협의회를 상대로 오는 8일 개최예정인 쌍용양회 임시주총에서 협의회의 의결권행사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또 협의회가 보유한 쌍용양회 주식에 대해 태평양이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다는 지위를 확인하기 위한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태평양시멘트 국내 관계자는 “그동안 쌍용양회 재무적 안정을 위해 배당을 전혀 받지 않았고, 재무 및 고용 안정성 등 장기적 안목으로 경영정상화를 지원했다”며 “협의회가 주식매각 절차를 지속해 경영권을 잃는다면 향후 한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협의회가 갖고 있는 쌍용양회 주식에 대한 매수 및 협상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며 “공개매각 시도는 태평양의 우선매수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라고 강조했다.
현재 태평양시멘트와 협의회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태평양은 향후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결을 보고 다음 수순을 정할 계획이다.
◇ 쌍용양회 매각 가시밭길
이에 반해 산업은행은 쌍용양회 매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태평양시멘트가 채권단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권 행사를 거부한 것으로 판단해 공개매각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태평양시멘트와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태평양이 추가적인 지분 투자없이 현재의 지위(경영권)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판단, 공개매각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시멘트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쌍용양회의 가치도 올라갔다”며 “채권단 입장에선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시점에 보유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M&A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강승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신규주택 분양물량 증가가 이어지고, SOC 예산도 크게 축소되지 않아 시멘트 출하량은 양호할 것”이라며 “쌍용양회는 동양시멘트보다 시장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M&A를 통해 시장이 재편되면 시멘트 업체 주가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쌍용양회(태평양 측)와 채권단의 대립이 팽팽한 상황에서 채권단 지분을 인수한다고 해도 쌍용양회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과 태평양시멘트가 법정 공방을 벌이는 중이라 향후 전개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채권단 지분을 매입하면 최대주주가 되긴 하지만 태평양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궁지에 몰린 산업은행이 시멘트 업황이 일시적 개선 조짐을 보이자 쌍용양회를 서둘러 매각하려는 것 같다”며 “하지만 장기적 업황이 밝지 않아 매수자가 나타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