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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현대중공업 상장 넉달만 참았더라면

  • 2022.01.21(금) 15:05

EU '조선 빅딜' 불허 4개월 전 IPO 추진
선결조건 충족되지 않은 채 자본유치만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지난주 산업계에서 가장 큰 화제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무산 소식이었습니다.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시장 독점 우려로 두 기업 합병에 반대하면서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것이죠.

'조선 빅딜'이 좌초되자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업을 '빅2'로 개편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던 정부의 계획은 결국 3년 만에 백지화됐죠.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지배 구조까지 개편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입장도 난처합니다.

특히 2019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에서 물적분할된 비상장사 현대중공업을 지난해 다시 기업공개(IPO)에 나선 것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EU의 기업결합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IPO를 추진했어야 하나'라는 아쉬움입니다. 조선빅딜이 무산된 현재 시점에서보면 현대중공업이 상장된지 4개월 뒤에 EU는 조선빅딜의 기업결합을 불허했습니다.

이번 '조선 빅딜'은 국내·외 기업결합이 완료되기 전까진 '미완의 딜'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체결한 본계약엔 경쟁당국 6개국(한국, EU,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으로부터의 승인이 기업결합의 선결 조건이었죠. 조선 빅딜은 선결 조건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성급하게 현대중공업만 상장한 셈입니다.

EU가 예상치 못한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닙니다. EU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인수 초기부터 LPG 독과점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표해왔죠. 작년 중순부터는 EU가 조건부승인 내지 불승인을 내릴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측 역시 이에 대해 몰랐을 리 없었을겁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사연은 있습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EU의 기업결함 심사가 차일피일 미뤄졌죠. 당초 6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던 '조선 빅딜'은 3년 만에야 결론이 난 것입니다.

투자도 시급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상장을 통해 1조800억원을 확보했고 그중 7579억원을 미래사업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EU의 결정과는 별개로 현대중공업은 자율운항 선박, 수소 산업 등 미래 산업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만큼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회사 측은 현대중공업의 IPO는 '예고된 상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을 했을 당시부터 상장 요건과 시장 여건이 허락된다면 현대중공업 상장을 추진할 계획을 밝혀왔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이 '조선 빅딜' 과정에서 추진됐다는 점 때문이죠. 한국조선해양이 설립된 배경도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를 원할하게 추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전량(55.7%)을 한국조선해양에 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의 신주를 지급하는 구조를 짜기 위해서였죠.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멀쩡한 회사를 물적분할하고 물적분할으로 설립된 비상장사를 다시 상장하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현대중공업그룹이 먼저 EU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받았다면, 그래도 현대중공업의 IPO를 추진했을까요? 이런 저런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답을 듣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성급했던 현대중공업의 상장에 아쉬움이 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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