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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반도체 '보릿고개' 길어지는 이유

  • 2022.02.25(금) 07:50

반도체 난 지속되자 옵션 빼고 출고
"차 반도체 수익성 낮아 우선순위 밀려"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로 인한 생산 감소'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매달 발표하는 자동차 판매 실적 자료엔 작년 중순부터 이 같은 문구가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차량 판매 실적 감소의 주원인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있다는 것이다.

작년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실적에 발목을 잡아왔던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언제쯤 개선될지 업계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더딘 근본적인 이유로 △다른 반도체 대비 낮은 수익성 △긴 반도체 사이클 주기 등을 꼽고 있다.

옵션 빼고 출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1월 자동차 산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자동차 생산은 27만1054대로 전년동기대비 13.7% 감소했다. 생산 감소는 판매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 국내 5개 주요 완성차 업체(현대자동차·기아·한국GM·르노삼성차·쌍용자동차) 중 전년동기대비 판매가 증가한 곳은 르노삼성차가 유일했다. 

산업부는 △설비공사로 인한 휴업 돌입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자동차 생산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현대자동차는 아산공장을, 한국GM은 창원공장과 부평1공장 등을 각각 멈춰세웠다. 이 여파로 현대차의 지난달 생산량은 전년동기대비 16.7%, 한국GM은 65% 각각 줄었다. 

생산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작년부터 전 세계에서 계속된 문제다. 지난해 전 세계 차 판매량은 7640만대로 전년 대비 4.1%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이는 예상치 9%를 하회한 수치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인 2019년(8683만대) 판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업계에선 내년쯤은 돼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판매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몇 가지 차량 옵션을 뺀 차량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기아는 현재 K8 후방 주차 충돌 방지,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을 제외하면 가격을 할인해 주거나 출고 시기를 앞당겨주고 있다. 현대차도 최근까지 옵션을 제외해 출고를 앞당겼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BMW는 작년 말부터 6시리즈 GT모델에 서라운드 뷰 기능을 빼고 출고 중이다. 일부 세단 모델엔 터치스크린 옵션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일부 차량에 전동 메모리 시트 옵션, 스마트폰 무선충전 패드 등 옵션을 제외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인기 모델의 경우 출고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대 1년"이라며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판매를 끌어올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수익성 낮은 차량용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선 타 반도체 품목 대비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꼽는다. 스마트폰, PC 등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IT 제품 반도체들의 수요가 견조한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 업체들이 굳이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단 얘기다.

내연기관차 기준으로 차량 1대엔 약 100~300여개의 반도체 부품들이 탑재된다. 하지만 이 부품들은 단순 작동을 제어하는 반도체 부품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공정이 단순해 수익성이 낮다. 

이에 반해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용 PC 등에 탑재되는 IT 반도체는 고사양 제품이다. 수익성이 높은 데다 수요도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자동차 외에도 스마트폰, 가전 제품 등에서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반도체 시장이 호황인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에 관심을 갖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동헌 현대자동차그룹 자동차산업 연구실장도 "현재 생산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는 기존 생산설비로 생산 중"이라며 "최근 파운드리 업체들이 증설하는 반도체 공장들은 대부분 IT, PC에 탑재될 반도체와 관련된 생산 설비로 알고 있다. 이들 입장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반도체 대비 교체 주기가 긴 것도 주된 이유 중 하나다. 2~4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IT제품 반도체 호황과 달리 차량용 반도체의 호황 주기는 7~10년이다. 수익성도 낮은 데다  주기도 더 기니 반도체 업체 입장에선 이 시장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 과정도 까다롭다. 차량용 반도체가 운전자의 안전과도 직결돼 있어 개발 과정, 공정 등이 더 엄격하다. 차량용 반도체 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를 하나 개발하는데 2~3년이 소요되고 테스트 기간 역시 다른 반도체보다 더 길다"며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 충돌 등 다양한 변수에도 품질이 변하지 않을 정도의 내구성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 반도체 진출 한다지만…

최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텔은 지난 17일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관련 인수합병(M&A)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다만 현재 글로벌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은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전기차 1대 생산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는 약 1000여개로 내연기관차 대비 더 많은 차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향후 전기차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래에 초점을 맞춘 투자란 얘기다. 

이동헌 연구실장은 "설비 투자를 확정하고 실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는 최소 2~3년 정도가 소요된다"며 "즉 생산 증설로 인한 케파(생산능력)가 증가할 것은 향후 2~3년 후의 일로 현재 차량용 반도체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제한적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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