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KAI) 인수 의지가 더욱 견고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함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한 이상으로 지분을 확보하면서다.
방산업계와 재계에서 주목하는 건 한화의 다음 스텝이다.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이 매각에 아직은 미온적인 가운데, 매각 방침을 공고히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추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을 더욱 확대해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확보하는 등 여러 방안이 가능하다.
다만 KAI 매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변함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번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에 어떠한 근거를 대느냐에 따라 향후 움직임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속도 더 낸 한화
1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은 지난달 8일부터 한달여간 KAI의 지분 3.45%를 장내 추가 매입했다. 투입된 자금은 5000억원가량이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이 보유한 KAI 지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9.90%, 한화시스템 4.98%,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가 1.01%로 등 총 15.89%로 확대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앞서 지난 3월 이후 한화 방산 계열사들은 연이어 KAI의 지분을 사들이며 인수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예견됐던 행보다. 지난달에는 한화시스템이 연중 추가로 5000억원 규모의 KAI 지분을 장내매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만 '속도'는 달라졌다. 애초 지분 인수 계획의 시계는 연말이었지만 이를 약 5개월가량 앞당겨 마무리 지은 셈이다.
속도를 낸 핵심 요인은 '주가'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화 측이 지난달 이사회에서 5000억원 규모를 투입해 추가 지분 인수 의지를 내비쳤을 때 KAI의 주가는 16만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극대화 하면서 KAI의 주가 역시 하락했다. '투자' 보다는 '지분확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지분을 살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한화가 이 과정에서 KAI 지분율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 상장사의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게 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화 계열사들의 KAI 보유 지분이 합산 15.89%에 도달하면서 기업결합 심사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간 방산업계에서는 한화가 KAI 지분을 15% 넘게 확보하더라도 당장 독자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만큼 기업결합 심사라는 추가 절차를 감수하면서까지 지분 매입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지분 매입에 속도를 내며 결국 15%선을 넘어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분율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내려가며 추가 지분 매입 환경이 더욱 우호적으로 바뀐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공정위 심사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인수 의지를 내비친 만큼 결국 거쳐야 할 절차란 판단 아래 이번에 지분을 추가로 매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의 다음 스텝은 '기다림'?
방산업계와 재계에서 주목하는 건 한화의 다음 스텝이다. 한화가 현재와 같은 장내매수 방식으로 지분율을 끌어올려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설지, 아니면 현재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의 매각 방침이 설 때까지 2대 주주자리를 지키느냐다.
현재 KAI 지분은 한국수출입은행이 26.41%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한화그룹이 15.89%, 국민연금이 8.1% 안팎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이를 제외한 약 49.6%의 지분은 외국인·기관·개인 등 기타 주주들에게 분산돼 있다.
수출입은행 지분을 사들이지 않더라도 '돈'만 있다면 장내 매수를 통해 한화가 KAI 지분율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거다.
다만 이를 위해 한화 측이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지분은 10.53%선으로 적극적인 장내 매수 과정에서 주가 상승에 따른 인수 비용 증가, 추가 공시 및 기업결합 절차 등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다.
게다가 KAI는 방산업체 특성상 지분 확보만으로 경영권 인수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현행 방위사업법은 방산업체의 경영 지배권에 실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 일정 요건에 따라 산업통상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화가 추가 지분 매입을 통해 최대주주에 올라 실질적인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경우 정부 판단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넘어야 한다.
따라서 한화는 정부가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KAI 지분 매각 결정을 내리고 이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라서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단 현재까지 수출입은행은 KAI 매각을 공식화 하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란 점이 고민거리다.
앞선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이 지분을 매각할 때까지 한화 측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만 한화 측에서는 하루 빨리 KAI를 인수해 방산 포트폴리오를 굳건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최근 지분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첫번째 시험대' 될 공정위 결합심사
방산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한화그룹과 KAI에 대한 기업결합심사가 첫번째 시험대가 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심사는 한화가 KAI 지분을 15% 이상 확보함에 따라 법정 신고 기준을 넘어 의무적으로 받는 경우다. 신청 자체를 두고 정부가 KAI 매각 의지를 내비쳤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만 심사 결과의 의미는 작지 않다. 공정위가 이번 심사를 통해 한화와 KAI의 결합이 국내 항공·방산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지, 양사 간 수직계열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처음으로 본격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심사는 향후 KAI 인수에 대한 최종 판단이라기보다 한화와 KAI의 결합에 경쟁법상 장애물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예비고사' 성격을 띤다는 거다.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이번 기업결합을 별다른 조건 없이 승인한다면 한화와 KAI의 결합 자체에 중대한 경쟁제한 우려가 없다는 첫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반대로 강한 시정조치가 부과되거나 결합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한화도 향후 KAI 인수 전략을 다시 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경쟁제한성이 크다고 판단하면 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 처분이나 영업방식 제한 등의 시정조치를 명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15%선을 넘어선 한화가 일정 수준의 규제 리스크까지 감수하고 지분 확대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