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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노믹스 비상]선진국형 금융투자 근육 키워야

  • 2020.05.20(수) 15:23

[비즈니스워치 창간7주년 기획 시리즈]
코로나 폭락장서 드러난 묻지마식 투자 경향
교육·제도 손질로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해야

"아는 형님이 지방에서 횟집을 하는데 은행 대출 지원금을 받아 주식 투자를 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국내 증시가 역대급 '롤러코스터'를 타던 올 3월,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뜨겁던 당시 투자 열기를 설명하며 혀를 내둘렀다.

"일부 지방에선 소상공인에게 코로나 극복 차원에서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데 그 돈으로 저렴해진 주식을 사서 오를 때까지 버텨도 되냐는 거죠. 가까운 지인이나 손님들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다 주식 투자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자니 왠지 손해보는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여파로 국내외 증시가 급락하던 지난 3월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의 모습. 이날 코스피 지수는 12년만에 전 거래일 대비 8%포인트 이상 급락하며 1450선까지 내렸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금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증시 변동성이 커졌던 올 3~4월은 그야말로 주식 투자 열풍이었다. 외국인은 '엑소더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국 주식을 내다 던지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사자 주문 행진으로 증시 반등을 주도했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올 1분기 주요 증권사들의 신규 계좌 개설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리테일 강자' 키움증권은 비대면 계좌 개설 급증에 힘입어 리테일 부문에서 역대 최대 실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의 시대는 끝났다고 봤던 증권사들은 리테일의 부활에 놀라는 분위기다.

돈을 싸들고 증시 입성을 노리는 개미들이 넘치고 거래대금이 확대되는 등 모처럼 영업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금융투자 업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제대로 된 투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정확한 금융지식 없이 폭락장에서 한몫 잡으려고 뛰어드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투자보다 투기, 시장 발전에 도움 안돼

최근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투기 과열의 중심에는 일명 '주린이(주식+어린이)'로 불리는 초보들이 자리잡고 있다.

증시 변동성이 완화되자 주식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주린이는 하루에 수십 퍼센트(%)씩 등락하는 레버리지와 인버스라는 고위험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소위 '존버(매도하지 않고 버티는 것)하면 무조건 돈 번다'를 외치며 가상화폐 투자에 나섰다 원금도 못 찾은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자금 부족으로 부동산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도 투자 대박을 꿈꾸며 증시로 찾아들고 있다.

이들에게 대박 수준은 아니더라도 만족할만큼의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거나 '묻지마식'의 무모한 투자를 방조한다면 금융투자 시장 발전 측면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카지노게임을 하듯 배팅을 하는 한탕주의의 만연은 건전한 투자 문화 정착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 동학개미운동 이어가려면 교육·제도 손질 따라야

경제 전문가들은 모처럼 찾아온 투자 열풍의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올바른 투자 문화 정립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옛 대우증권 사장 출신으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체계적인 투자 교육'을 강조했다.

홍 의원은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초·중·고 정규 교육 과정에 경제와 금융에 대한 교육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라며 "자산 투자보다 관리라는 개념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을 비롯해 입법 기관에서도 건전한 투자 문화 조성을 위해 투자자 교육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 제도적 손질에 적극 나서야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 활성화의 최대 과제로 꼽히는 증권거래세 폐지를 비롯해 공매도 제도 개선과 사모펀드 활성화 등 금융·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와 육성책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매도할 때 내는 세금을 말하는데 지난해 초부터 폐지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며 속도가 붙었지만 금융당국은 폐지 대신 인하를 결정했다. 작년 5월 증권거래세는 23년만에 0.3%에서 0.25%로 0.05%포인트(P) 인하됐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본시장의 새판을 짜기 위해 증권거래세의 점진적 폐지 및 상장주식의 양도 소득세 부과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과세제도의 합리화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코로나 폭락장에서 기승을 부려 논란이 됐던 공매도 제도 역시 큰 쟁점 가운데 하나다. 공매도란 특정 종목의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 주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와 미리 팔아 치우고, 며칠 후 같은 수량의 주식을 사들여 갚는 방식이다. 공매도 세력인 기관과 외국인은 코로나 폭락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만 주가 급락으로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와 관련 개인투자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작년 10월에 출범한 경제 시민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의 정의정 대표는 "공매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표본"이라며 "대폭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매도 제도 개선에 대한 비즈니스워치 질문에 "해외 주요국과 달리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주식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고려할 때, 불공정한 공매도 제도의 개선은 시급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업틱룰 예외조항을 축소하는 것과 차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 무차입공매도에 대한 엄격한 사후처벌 조항 등 공매도 시장에서의 제도개선 사항을 상반기 중에 마련해 줄 것을 금융위에 요구했고,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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