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과 옵티머스 등 잇따른 대형 사고로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가운데 사모펀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상호 견제·감시 시스템 구축이 본격화된다.
총대를 멘 한국예탁결제원은 기존 공모펀드 관리시스템인 펀드넷에 기반해 비시장성자산 표준코드 관리 기준을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펀드자산 잔고를 비교 검증하는 시스템을 내년 상반기 중 마련할 계획이다.
예탁원은 12일 사모펀드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지원 시스템 구축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예탁원은 먼저 자산별로 표준코드 부여 필요 여부를 판단한 뒤 자산 구분과 세부 정보의 관리 범위 기준을 결정하기로 했다.
사모펀드는 주로 부동산 담보채권이나 매출채권, 사모사채 등의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한다. 이런 자산의 경우 시장 참가자별로 코드를 자체 생성·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사모펀드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탁원은 비시장성자산의 표준코드를 관리기준을 만들고 코드를 생성해 운용사와 신탁업자 등 시장 참여자에 공유할 계획이다.
표준코드 부여와 더불어 펀드넷을 통해 사모펀드의 자산 내역을 비교 검증할 수 있는 잔고대사 지원시스템도 구축된다. 펀드넷은 자산운용회사·수탁회사·판매회사·일반사무관리회사 등 펀드 관련 금융회사가 펀드의 설정·환매와 결제, 운용 지시, 감독 지원 등의 업무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예탁원이 2004년 구축한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이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운용사와 사무관리사, 신탁업자 등 시장 참여자들이 시스템 상에서 사모펀드 투자 자산의 성격과 만기, 수익률 등을 파악해 펀드 잔고를 비교 검증하기 수월해질 전망이다.
예탁원은 자산운용업계와 협의해 내년 6월까지 비시장성자산 표준코드 관리시스템과 잔고대사 지원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한 뒤 하반기에는 전자계약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과 비시장성자산 운용지시 지원 확대까지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예탁원이 추진하는 사모펀드 상호 견제·감시 시스템은 그 이용에 있어 법적·제도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업무 효율성과 리스크 통제에 있어 운용사와 수탁사, 일반사무관리회사 등 시장 참여자들에 유리해 활발한 도입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예탁원 측 견해다.
김용창 예탁원 사모펀드투명성강화추진단장은 "사모펀드 참여자들의 의견 청취 결과 일부 운용사가 운용 전략 노출 등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현재 구축하는 시스템은 '몇 %로 몇 주를 샀다'와 같은 구체적인 거래 정보는 비공개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업무 효율성과 투명성 강화 측면에서 편의성이 뛰어난 만큼 관련 업계가 자율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공모펀드 관리 시스템인 펀드넷의 경우에도 사용을 강제하지 않았지만 뛰어난 편의성 덕분에 이를 이용하지 않으면 시장 참여자 간 서로 업무 처리를 거부하는 등 자율적인 생태계가 마련된 사례가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다만 예탁원의 시스템은 국내 사모펀드에 국한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사모펀드의 경우 공인인증서와 전자문서 등의 법적 효력이 없어 현실적으로 자산 실재성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예탁원이 사모펀드 상호 견제·감시 시스템 개발 주체로 나선 것은 운용사의 계획적 사기로 드러난 옵티머스 펀드 사고 당사자 중 유일한 공공기관인 탓이 크다. 옵티머스 펀드 사고의 경우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선 실제로는 사모사채 발행사를 경유해 부동산 등에 투자하거나 펀드 간 돌려 막기에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사무관리를 맡은 예탁원 역시 운용자산 확인 여부를 두고 책임론에 휩싸였다.
이에 예탁원은 지난 8월 사모펀드 감시와 견제를 위한 전담조직인 '사모펀드투명성강화추진단'을 설치하고 김 단장을 포함한 9명의 펀드 전문 인력을 투입했다. 예탁원이 제시한 사모펀드 상호 견제·감시 시스템의 개발과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예탁원 자체 예산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한편 예탁원은 옵티머스펀드 사고 이후 사무관리 업무를 중단한 상태다. 재개 여부와 관련해 고창섭 예탁원 자산운용지원본부장은 "예탁원의 사무관리 사업은 사무관리회사를 찾지 못하는 운용사들에 업무를 지원하는 공적인 성격도 있었다"며 "사업을 재개할지 접을지에 대해선 아직 고민하는 단계"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