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창립해 페인트, 샴푸 등에 필요한 기초화학소재를 생산하는 애경유화가 애경그룹 소속 계열사인 애경화학, AK켐텍 두 회사를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했어요.
▷관련공시: 애경유화 8월 5일 주요사항보고서(회사합병결정)
합병은 두 개 이상의 기업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말하죠. 합병에는 흡수합병과 신설합병이 있어요. 흡수합병은 A라는 회사가 B회사를 흡수해 A만 남는 것. 신설합병은 A와 B가 합병하면서 새로운 C회사로 탄생하는 것을 말해요.
애경유화는 애경화학과 AK켐텍 두 회사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어요. 즉 최종적으로 애경화학과 AK켐텍을 품은 애경유화만 남는 것이죠.
애경유화는 상장(유가증권시장)기업이지만 애경화학과 AK켐텍은 비상장사예요. 애경유화 주주들 입장에서는 이번 합병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부터 애경유화 합병공시를 읽어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볼게요.
3사 통합해 애경케미칼 탄생
합병 공시를 보기 전 3개 회사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① 애경유화
애경유화는 무수프탈산, 무수마레인산 등 기초화학소재를 생산하는 기업. 페인트 재료, 샴푸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 접착제, 화장품 만드는 데 필요한 글리세린 등에 애경유화가 만든 화학제품이 들어가요.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K홀딩스(지분 49.44%)가 최대주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는 애경유화 지분을 0.02%(5500주)로 소량 보유 중.
② 애경화학
애경화학은 자동차, 선박, 잉크, 접착제 등에 사용하는 합성수지를 만드는 곳.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된 합작법인이었지만 2019년 12월 AK홀딩스가 지분을 확보하면서 더 이상 외국인투자기업은 아니에요. 최대주주는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AK홀딩스.
③ AK켐텍
AK켐텍은 계면활성제, 세제 등을 생산하는 곳. AK홀딩스가 지분 81.36%를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9.1%, 장 회장의 아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2.69%,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가 1.66%, 기타 5.19%가 AK켐텍 지분을 보유 중이에요.
애경그룹은 애경유화와 애경화학, AK켐텍을 합병해 애경케미칼(가칭)이라는 대형 화학회사를 만들 계획.
애경화학, 애경유화의 18배가치
애경유화가 애경화학과 AK켐텍을 흡수합병하면 애경유화는 애경화학과 AK켐텍 주주들에게 합병비율에 따라 애경유화 신주를 나눠줘야 해요. 애경화학과 AK켐텍이 아예 사라지니 그에 대한 대가를 애경유화 주식으로 지급하는 것이죠.
이 때 중요한 것이 합병비율. 보통 상장회사 간에 합병할 때는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해요. 최근 1개월 평균주가, 최근 1주일 평균주가, 최근일 종가의 평균값과 최근일 종가 중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구해요. 주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명확한 가격이기 때문에 상장회사 간 합병비율에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문제는 애경유화처럼 비상장회사를 합병하는 경우. 비상장사는 시장에서 거래하는 주가라는 게 없기 때문에 비상장사의 자산가치(순자산가치÷발행주식 수), 수익가치(앞으로 얼마나 벌 것인지), 상대가치(유사한 사업을 하는 상장회사들의 주가와 이익, 순자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등을 종합해 합병가액을 구해요.
애경화학과 AK켐텍은 비교대상이 될만한 회사가 없다고 판단,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만 놓고 비교를 했어요. 그 결과 애경유화, 애경화학과 AK켐텍의 합병가액은 1만2892원(애경유화), 23만5412원(애경화학), 8786원(AK켐텍)이 나왔어요.
3개 회사의 합병가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출 헸더니 1:18.26:0.68(애경유화:애경화학:AK켐텍). 즉 애경화학 1주당 18.26주, AK켐텍 1주당 0.68주의 애경유화 주식을 지급한다는 뜻이죠. 문제는 비상장사인 애경화학의 합병가액이 상장사인 애경유화의 18배나 된다는 점.
합병비율 산정근거는?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는 1:1.5의 비율로 평가하도록 되어 있어요. 수익가치를 더 높게 쳐주는 것이죠.
자산가치는 이미 정해져있는 수치인 순자산가치를 발행주식수로 나누기 때문에 평가에 주관이 들어갈 일이 없어요. 하지만 수익가치는 앞으로 얼마나 돈을 벌어들일지를 따져 구하기 때문에 평가 시 주관이 들어갈 여지가 있어요.
애경화학의 매출액은 △2018년 2615억원 △2019년 2213억원 △202년 1956억원 △올해 상반기 1233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애경화학의 수익가치 평가를 위해 앞으로 벌어들일 매출액 추정치를 계산한 결과 △2021년 2433억원 △2022년 2484억원 △2023년 2552억원 △2024년 2685억원 △2025년 269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이렇게 전망한 근거는 현금흐름할인법을 활용했기 때문인데요. 영어로 Discounted Cash Flow(DCF)라고 해요. 현금흐름할인법은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의 흐름이 어느 정도 될지 쭉 뽑은 뒤 이를 현재가치로 다시 환산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에요.
현금흐름할인법을 활용해 애경화학의 2018년~2021년 상반기 실적을 기준으로 2021년 연간~2025년까지 5년 치의 실적을 추정한 결과 기업가치를 1516억원으로 계산했어요. 기업가치에 차입금 등 부채와 배당금지급액을 빼자 714억원의 수익가치가 나왔고 이를 발행주식수(27만1000주)로 나눈 결과 1주당 수익가치가 26만3572원이 나온 것이죠.
**참고로 [자산가치(19만3171원)×1+수익가치(26만3572원)×1.5]÷2.5를 계산하면 23만5412원의 합병가액이 나와요. AK켐텍도 동일한 방식으로 합병가액을 구했어요.
현금흐름할인법은 기업회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항상 논란의 꼬리표가 따라붙었는데요.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이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흡수합병하면서 현금흐름할인법을 활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 그리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절반을 보유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를 동시에 부풀렸다는 논란도 있었죠.
총수일가, 앉아서 지배력 확대
미래가치를 반영하다보니 현재 거래되고 있는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한 애경유화보다 애경화학에 대한 평가가 더 높게 나왔어요. 이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애경화학의 최대주주는 AK홀딩스(지분 100%). AK켐텍 역시 AK홀딩스가 지분 81.36%를 보유하고 있죠. AK켐텍의 나머지 지분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과 장 회장의 아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11.79%를 보유 중인데요.
애경유화가 애경화학과 AK켐텍을 흡수합병하면 주주들에게 애경유화 주식을 찍어 줘야 해요. 애경화학 주주인 AK홀딩스는 1주당 18.26주의 애경유화 주식을 받고요. AK켐텍 주주인 AK홀딩스와 장영신 회장 등은 1주당 0.68주의 애경유화 주식을 받아요.
이번 흡수합병으로 애경유화는 1660만8709주의 합병신주를 찍어낼 예정. AK켐텍 주식을 보유 중인 포항공과대학교와 기타 주주(6.85%)를 제외하면 합병신주 대부분을 AK홀딩스와 장영신 회장 등 총수일가가 확보할 예정이에요.
흡수합병 뒤 AK홀딩스의 애경유화 지분율은 기존 49.44%(1583만9821주)에서 62.23%(3027만4778주)로 크게 늘어요.
특히 AK홀딩스의 지분율 증가는 사실상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라는 점.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K홀딩스는 애경유화 49.44%, 애경화학 100%, AK켐텍 81.36%의 지분을 보유 중이죠. AK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장영신 회장 및 채형석 총괄부회장 등 총수일가예요. 이들의 지분(총수일가가 최대주주인 비상장사 AKIS, 애경개발 포함)이 64.86%에 달해요.
결국 총수일가는 앉은 자리에서 추후 애경그룹의 핵심 화학회사가 될 애경케미칼(가칭)에 대한 지배력을 크게 확대하는 셈이에요.
"이 합병 나는 반댈세"
흡수합병은 기존과 다르게 사업구조가 바뀌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를 거쳐야 해요. 애경유화는 오는 9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애경화학과 AK켐텍을 흡수합병하는 안건을 올릴 예정인데요.
그 전에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애경유화 주주들은 회사에 합병반대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요. 합병 반대의사를 전달한다는 건 곧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뜻. 즉 "난 이번 합병 반대하니 더 이상 애경유화 주식 필요 없어. 내 주식 애경유화 너희가 적절한 가격에 사가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면 주주총회전인 9월 15일~29일까지 합병반대의사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해요. 이후 9월 30일~10월 20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이때 얼마에 회사가 내 주식을 사줄 것인지 가격이 중요한데요. 애경유화는 1주당 가격을 1만2726원으로 제시했어요. 13일 기준 애경유화의 종가는 1만2750원.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주주라면 지금 시장에서 파는 것이 더 현명하겠죠.
애경화학과 AK켐텍 주주도 주식매수청구권(각각 1주당 23만5412원, 8786원)을 행사할 수 있는데요. 다만 애경화학과 AK켐텍 주주는 애경유화와의 합병을 원하는 AK홀딩스와 총수일가이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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