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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배임에 멍든 자본시장…새해 돈 묶인 개미만 6만명

  • 2022.02.23(수) 16:53

'믿고 투자했는데'…올들어 개인자금 1.2조 동결
국민 법 감정 안 맞아…형량 강화 목소리 '힘'

"개미가 회사 내부직원의 횡령을 사전에 어떻게 알 수 있나. 사건이 터지면 상장폐지 심사한다며 투자한 돈을 묶는 거 자체가 불합리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시작에 불과했을까. 새해 들어 횡령·배임으로 상장사들의 주식거래가 잇달아 정지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최근에는 상장 문턱이 높은 코스피 기업에서까지 직원의 횡령 사실이 확인되면서 내부통제 부실은 단순히 '코스닥 디스카운트'(할인) 차원이 아닌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느슨한 내부통제를 바짝 조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경각심을 줄 수 있는 형량 강화로 상장사들의 횡령·배임을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거래정지 벌써 4곳…개인투자자 '한숨'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횡령·배임 혐의가 확인돼 주식거래가 정지된 상장사는 오스템임플란트를 비롯해 세영디앤씨, 계양전기, 휴센텍 등 벌써 4곳이 나왔다.

이들 기업의 횡령금액 총 2849억원으로 거래정지로 묶인 소액주주만 5만7758명에 이른다. 동결된 투자금은 1조2674억원이다. 

횡령·배임 문제로 앞선 2019년과 2020년 각각 거래가 정지된 코오롱티슈진과 신라젠까지 포함하면 발이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개미는 무려 28만7770명, 투자금은 2조1027억원으로 불어난다. 

이들 기업의 거래 재개 여부와 그 시기는 안갯속이다. 오스템임플란트와 신라젠만 해도 최근 각각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되고, 개선기간 6개월이 부여되면서 앞으로 반년 이상 거래정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스템임플란트가 다음달 14일까지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에 개선계획서를 제출해 개선기간을 갖고, 신라젠은 이번에 부여된 개선기간을 적용한 최소한의 시나리오다. 물론 절차는 더 남아 있다. 

코스피 상장사도 예외는 아니다. 동력식 수지공구 제조기업으로 업력만 45년에 돼가는 계양전기는 재무팀 직원이 회사 자기자본(1925억원)의 12.7%에 해당하는 245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15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내달 10일 기심위 심의대상 해당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 역시 15거래일이 추가로 연장될 수 있다. 이후에도 상장공시위원회 심사 등 지난한 절차가 뒤따른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자본시장내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투자한 회사의 일탈로 피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중 한 곳에 투자한 A씨는 "결혼 자금으로 넣어둔 돈인데 거래가 언제 풀릴지 모르니 괴롭다"며 "경영진 사퇴도 없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회사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자 B씨도 "믿고 분할 매수 중이었는데 꼼짝없이 돈이 묶였다"며 "왜 개미들만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형량 높여 위반동기 원천 차단해야"

횡령 기업들은 하나같이 직원 개인의 단독 범행을 앞세워 수습하기 바쁘지만 따져봐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에서 잇달아 대규모 횡령이 발생한 것에는 내부통제에 실패한 회사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오스템임플란트와 계양전기 모두 횡령 발생 공시 직후 낸 입장문에서 '최고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힌 점은, 역설적으로 그간 내부 회계관리가 부실했음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오스템임플란트의 최근 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 감사실 인원은 2019명 20명에서 작년 3분기말 기준 11명으로 축소됐다. 그나마 작년 8월 이후에는 감사실 활동도 전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와중에 재무팀 직원은 국내 증시 사상 최대 횡령금액인 2215억원을 빼돌렸다. 회사가 이를 인지한 건 이로부터 수개월 뒤다.

계양전기 횡령 직원은 은행 잔고 증명서에 맞춰 재무제표를 임의로 작성했다. 이후 구매 장부를 조작하는 식으로 2016년부터 6년간 245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 역시 회사가 아니라 외부감사인의 자료제출 요구에 횡령 당사자가 자백하면서 밝혀졌다. 회사내부적으로 이를 막거나 감시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단 뜻이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동일인이 자금 이체의 승인과 기록을 동시에 담당하는 운영이 가능했다는 것은 설계된 업무 분장대로 내부통제가 수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자금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회사는 잔고증명서 위조에 의한 횡령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금융자산·부채에 대한 계정 잔액의 입증 여부 등을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사들이 내부통제와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할 유인으로는 횡령·배임죄에 대한 형량 상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현재 국내 횡령·배임죄에 대한 형량은 범죄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으로 권고형량이 가장 높은 제5유형에 해당해도 5~8년에 불과하다. 범행수법이 불량하고 심각한 피해를 야기해 형량이 가중될 경우에도 7~11년이다.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단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선 후보 가운데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불공정으로부터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며 피해를 입을시 개별로 분쟁조정 절차를 밟지 않고 한꺼번에 조정할 수 있도록 일괄피해구제제도를 도입하겠단 공약 정도를 내놓은 상태다. 다만 여기에도 상장사 내부통제 부실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횡령·배임죄의 형량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 위반 동기를 원천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며 "더욱이 회사의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주가 폭락, 상당수 주주의 피해를 일으키는 만큼 합리적인 형량에 대한 구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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