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의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긴 조정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개인투자자들의 반도체 사랑은 여전한 모습이다. 이번 달에만 두 종목을 3조원가량 쓸어 담았다.
서학개미들도 반도체를 향한 러브콜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들어 국내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반도체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엔비디아, AMD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주의 낙폭이 과대하다고 보면서도 장밋빛 전망을 내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용감한 개인투자자들, 신저가에도 삼성전자 담았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2.54% 오른 6만8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작년 12월 8만원대를 잠깐 회복하기도 했지만 내림세를 거듭하며 올 들어 지금껏 12.26% 하락했다. 지난 12일 6만7000원의 종가로 52주 신저가를 돌파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13일 전일종가 대비 1.8% 오른 11만8000원으로 마감했다. 앞서 12일에는 11만1000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11월18일(11만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2월 13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이후 반락하며 작년 말 대비 13.74% 빠졌다. 모두 코스피 지수 낙폭(8.77%) 보다 크다.
그러나 우울한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들의 '사자' 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개인은 4월1일부터 12일까지 삼성전자를 2조5047억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4981억원어치 담았다. 이번달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집계치가 총 3조766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개인 자금의 80%가 두 종목에 쏠린 셈이다.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매수세가 쏠렸다. 작년에 상장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에는 개인투자자 자금 78억원이 유입됐다. 외국인(58억원)과 기관(22억원)이 던진 80억원 가량의 매물을 대부분 받아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반도체MV에는 28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이들의 4월 수익률은 각각 –11.82%, -11.01% 수준이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조회일 기준 4월 1~12일 국내투자자들은 해외주식 가운데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3X ETF(SOXL)을 가장 많이 사들였다. SOXL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순매수 규모는 3억4238만달러(한화 약 4197억원)에 이른다.
날짜 범위를 넓혀 올 1월부터 살펴본다면 9억353만달러(약 1조1079억원)를 기록하며 인기 종목인 테슬라를 제쳤다. 뒤를 이어 순매수 상위 2, 3위도 반도체 기업들이 차지했다. 투자자들은 4월 들어 엔비디아를 8669만달러(약 1063억원), AMD를 3708만달러(약 454억원) 가량 사들였다.
이들 상품은 지난해 높은 수익률로 국내 투자자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올초부터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 SOXL은 70달러를 상회하기도 했지만 현재 20달러대에 거래 중이다. 이번 달 들어서만 32.34% 급락했으며 올들어 지금껏 61.42% 빠졌다. 엔비디아와 AMD는 4월 들어 각각 21.19%, 13.02%씩 하락했다.
긴축 공포에 기술주 조정 장기화...수요 감소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정책이 예고됨에 따라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주들은 전반적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연준은 지난 3월 정례회의를 통해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어 대차대조표 축소에도 결의하며 긴축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부풀린 자금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으로 위험회피 심리를 자극해 기술주를 압박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낙관론을 배제하자는 분위기다. 주요 배경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지목된다. 소비 여력을 제한하고 IT제품 수요를 압박할 것이란 분석이다.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8.5% 뛰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주와 관련해 "하반기 전망을 떠나 워낙 빠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반도체 공급 부족 이슈로 고객사들이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수요를 채웠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하반기에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미 축적한 재고가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펀드매니저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올해 3분기부터 D램 가격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적이 2분기부터 꺾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가 조정을 받고 있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테마성 ETF는 순환매를 돌고 있기 때문에 개별종목 위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