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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도 못 믿겠다'…안전자산 CMA서도 자금 이탈

  • 2022.11.03(목) 09:03

레고랜드 사태 이후 CMA 1조원 유출
증권업계 위기론에 은행 예금으로 이동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맡겨놓은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주식 거래대금뿐 아니라 증시 대기 자금이자 통상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도 돈이 순유출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같은 자금 이탈의 1차적인 배경으로 은행의 높은 수신금리를 꼽고 있다. CMA에 돈을 넣어둘 경우 수익률은 연 2%대에 불과한 반면, 연초부터 이어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은행 예금의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레고랜드 사태로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번진 것도 역머니무브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레고랜드 사태 이후 뭉칫돈 빠져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 말 CMA 잔고는 61조2300억원으로 집계됐다. 1월 말 69조900억원과 비교하면 약 8조원 가까이 줄어든 셈으로, 지난해 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CMA는 투자자산에 따라 유형이 분류되는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형의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RP형 잔액은 6월까지만 해도 30조원대를 유지했으나, 7월부터 20조원대로 내려앉았다. 특히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발발한 9월 말 이후 한 달간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이때 유출된 자금 규모는 1조원을 웃돈다.

다른 유형도 마찬가지다. 기타형과 머니마켓펀드(MMF)형은 각각 1조1000억원, 1900억원씩 감소했다. 기타형에는 머니마켓랩(MMW)형 상품이 주로 포함돼있다. 

이에 따라 MMF 설정액도 대폭 줄었다. 금투협에 따르면 MMF 설정액은 10월 말 기준 148조5100억원으로 1월말 대비 10조원가량 감소했다. 이중 개인 MMF 설정액은 16조2500억원으로 금투협이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이 수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에도 16조원대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다만 대형사들이 판매하는 발행어음형 CMA 잔고는 늘어났다. 발행어음은 현재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만 발행이 가능해 관련 CMA 상품도 이들 4곳에서만 나온다. 4개사가 최근 발행어음 금리를 경쟁적으로 높이면서 발행어음형 CMA의 금리는 5%대로 여타 유형의 두 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지난달 한국투자증권은 1년 만기 어음 약정수익률을 4.75%에서 5.1%로 인상했다. 미래에셋증권은 4.10%에서 5.05%로, KB증권은 3.05%에서 5.00%로 높였다. 유일하게 NH투자증권이 4%대를 유지 중이지만 곧 5%대로 인상할 방침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증권업계 보릿고개에 안전한 은행으로

CMA를 빠져나간 자금은 은행 예금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저축성예금은 8월 말 기준 1570조원으로 1월 말 대비 65조원가량 늘었다. 금리 인상 기조로 주식 투자 열기가 식는 동시에 은행 예금 금리가 높아지면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 수신금리는 연 2%대에서 현재 3~4%로 뛰었다. 더욱이 일부 저축은행에서는 5~6%대 수익률을 자랑하는 예금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수신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예금 금리가 CMA 금리에 비해 높아졌다"며 "주로 CMA 계좌와 위탁 계좌를 동시에 갖고 있는 고객들이 많은데, 증시가 침체되면서 아예 대기성 자금인 CMA에서도 돈을 빼기도 한다"고 전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증권사들의 단기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점도 자금 유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자금 조달 시장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증권사들이 보증을 선 부동산PF 자산유동화물 금리는 대폭 뛴 상태다. 이에 증권사들은 역마진을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차환발행에 실패할 경우, 증권사가 직접 채권을 인수해야 하는 까닭에 유동성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에 증권사 도산설이 퍼지면서 '증권사가 망할 경우 그 계좌에 있는 돈은 어떻게 되는 건지'를 묻는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증권사들의 실적 악화로 인한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 먼저 3분기 실적을 공개한 금융지주 계열사들은 하나같이 암울한 성적표를 내놨다. NH투자증권, KB증권은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했으며, 하나증권은 9% 성장에 그쳤다. 그나마 신한투자증권은 본사 사옥 매각을 통해 벌어들인 일회성 자금으로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업황 악화 후폭풍으로 소규모 증권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곳도 눈에 띈다. 지난 1일 케이프투자증권은 리서치본부와 법인영업부를 연말까지 유지하고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본부 두 개가 폐쇄된 건 사실로, 지금 각 본부에 이를 전달한 상황"이라며 "향후 인력 감축 규모 등을 추가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형사로는 하나증권이 부동산PF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화금융본부를 폐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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