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루팡'으로 알려진 아르센 뤼팽은 20세기 초 발표된 추리소설 주인공이다. 그는 신사이면서 도둑이다. 귀족·자본가의 저택에 들어가 값비싼 물품을 훔친다. 반면 선량한 사람을 돕는 의적(義賊)의 성격도 갖고 있다.
시대배경을 프랑스에서 조선으로 옮기면 비슷한 인물이 또 있다. 홍길동이다. 그는 조선 연산군 때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도적떼의 우두머리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모델이 됐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은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신분이다. 때문에 그는 도적이 되어 양반들이 빼앗은 재물을 훔쳐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의적이 된다.
힘없는 서민들이 읽으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법과 질서가 명확한 요즘도 선의의 도둑이란 말이 통용될까.
▲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달 22일 현판식을 가졌다. |
최근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부터 휴대폰 기본료 폐지를 포함한 통신비 인하 대책방안을 보고 받고 있다.
모양새를 보면 미래부가 통신비 인하 방안을 알아서 만들어 국정위에 보고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한걸음만 들어가 보면 사실은 다르다. 미래부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3사를 압박해 통신비 인하방안을 보고받고, 취합된 내용을 국정위에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국정위는 미래부가 몇차례 보고한 안, 즉 통신3사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만든 통신비 인하방안이 마음에 안든다고 반려시켰다. 원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무한 반려할 기세다.
이쯤되면 국정위가 통신3사 임원들을 앉혀놓고 "통신비 얼마 깎을래"라고 협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협박이라는 단어가 거칠지도 않다. 정부가 요금인하를 집행할 방안은 없지만 갖가지 규제권을 갖고 통신사를 괴롭힐 수단은 많다. 즉 규제권을 갖고 요금인하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통신비 인하를 반대할 국민은 없다. 소설속 루팽·홍길동이 행했던 일처럼 모두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수단이 잘못됐다.
우선 통신업을 정의해보자. 국가 자산인 전파를 유상으로 빌려 영위하는 사업이다. 기간산업이라는 특성상 규제도 강한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기업의 이익범위까지 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너는 1000원 투자해서 200원 벌고 있으니 100원으로 낮춰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한가.
과거 정부들이 다 그렇게 했으니 잘못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토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 원칙과 상식은 국민이 이득보면 기업은 손해를 봐도 된다는게 아니다. 국민이나 기업에게 공히 적용되는 룰이다.
통신사 요금을 반강제적으로 낮추는 일은 주주가치도 훼손시킨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모두 상장사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뭐라 설명할 것인가. 정부 뜻대로 통신사가 요금을 낮췄다간 주주들에게 배임죄로 소송당할 수 있다. 국정위가 최근 시도하고 있는 일이 성공한다면 분명 투자자들은 앞으로 통신사 주식을 외면할 것이다.
통신사의 이익수준이 과다하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플레이어 수를 늘리는 편이 옳다. 현재 통신3사 형태로는 경쟁이 떨어지는 만큼 정부지원 아래 제4 이동통신사를 허가해주는게 필요하다.
단기 처방은 달콤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이다. 업계가 투자에 나서고 이를 통해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장기 묘책이 나와야 한다. 국민 다수에게 이익이 된다고 수단을 무시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