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발표가 예정됐으나 취소됐다. 이날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 교육부, 과기정통부, 법무부, 문체부 담당자와 경찰청 담당 국장 등이 브리핑실에 참석해 대책을 설명할 계획이었다. 이달초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한 후 조치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방통위 대변인은 "더욱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해서"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올 연말까지 대책안을 내놓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 발표가 미뤄진 것은 정부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 등 가짜뉴스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작년부터 관련 법안만 20개 발의
정치권에서도 지난해부터 가짜뉴스를 막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데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가짜뉴스와 관련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발의된 법안만 20건이 넘는다. 여야 국회의원을 가리지 않고 발의했다. 대부분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가짜뉴스 삭제 및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게 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자칫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호영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분쟁소지가 있는 기사에 포털 업체가 심의중 임을 알리는 별도의 표시를 넣자는 방안이 담겨 있다.
즉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 가운데 분쟁의 소지가 있어 심의하는 경우 해당 페이지에 이를 알리는 표시를 하자는 것이다.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모두 불법은 아닌데 표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낙인효과를 만들 수 있다.
가짜뉴스를 정의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호영 의원이 지난에 발의한 법안에는 가짜뉴스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타자를 속이려는 기만적 의도성과 허구임을 오인하도록 하는 언론보도 양식의 차용, 정보통신망의 사용' 등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정의했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따지는 요소로 '기만적'과 '허구'라는 의미는 다소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허위정보는 이미 존재하는 법과 제도를 통해서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도 떨어진다. 더구나 규정을 위반한 자에게 3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 여야 입장 엇갈려, 법안 통과 난항 예고
가짜뉴스 대책과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법안은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가짜정보유통방지에 관한 법률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가짜뉴스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의원은 허위정보의 폐해가 분명한 만큼 독일과 같은 법적 규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짜뉴스란 명칭 대신 '허위조작정보'란 말을 사용하고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가짜뉴스 피해가 속출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 정의를 내리고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가짜뉴스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연간 약 30조900억원으로 추정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가짜뉴스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만큼 개념 정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가짜뉴스와 관련해 여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고 정쟁화 수단으로 삼고 있어 관련 법안이 통과하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실제로 과거 집권 여당 시절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였던 자유한국당은 현재 가짜뉴스를 정부가 규제해선 안된다며 입장을 바꾼 상태다. 반대로 과거 '표현의 자유 침해'를 외쳤던 더불어민주당은 최근들어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은 당대엔 가짜뉴스로 취급됐으나 후일 사실로 판명됐다”면서 “현재의 뉴스 속에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데 국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의원은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이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전 정권 때에도 세월호가 국군의 어뢰 잠수함이라는 등 루머가 많았으나 당시엔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서 “이제 와서 대통령 건강 이상설, 5. 18 북한 침투설 등을 주장하는 동영상을 지우자는 것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