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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팩트체크]⑧가네보화장품·리갈구두의 뿌리

  • 2019.09.30(월) 11:00

<비즈니스워치 특별기획 전범기업 분석> 화장품·구두업체
가네보화장품, 전남 광주에서 여성 강제동원한 가네가후치에 뿌리
일본제화에서 출발한 구두업체 리갈, 조선인 강제동원한 전범기업

'광주광역시 북구 경양로 9' 

인터넷포털사이트에서 이 주소를 검색하면 '전남방직'이라는 기업이 나온다. 줄여서 '전방'이라고 부르는 이 기업은 면 방적업체로 모달, 혼방 등 옷의 재료가 되는 실을 만든다.

'전방'의 전신은 가네가후치방적 광주공장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네가후치방적은 일본기업이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로 유명한 가네보(カネボウ)의 전신도 가네가후치방적이다. 일본기업이 뿌리인 만큼 '전방'의 창업자(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부친)를 둘러싼 친일 논란도 제기됐다.

가네가후치방적 광주공장이 있었던 자리.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가네가후치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미군 통역관이었던 김형남이 1951년 600여만원에 적산으로 관리하던 전남방직공사를 불하받았다. 이후 1961년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리되고 전남방직은 김용주(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부친), 일신방직은 김형직이 나눠갖는다. 가네가후치 방적이 운영되던 시절 2500명에 달하는 여공들의 손에 의해 공장이 운영되었는데, 질병과 사고로 죽어나가는 일도 많았고 완도, 고흥, 보성, 담양 등 전남 각지에서 10세 안팎의 어린 소녀들이 동원되었다. [자료=광주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자국에서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도 작업장을 두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가네가후치방적이 한반도에 운영한 강제동원 작업장 수(확인된 곳)가 무려 31곳이다.

강제동원 대상은 비단 남성만이 아니었다. 제철·제강·해운 등의 분야는 주로 남성을 동원했지만 방적분야는 여성이 동원되는 일도 많았다.

태평양전쟁 시기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일본 기업의 업종은 다양하다. 지난 2012년 당시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실이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대일항쟁기 위원회)'로부터 자료를 받아 발표한 299개 전범기업 중 하나인 리갈코퍼레이션(옛 일본제화), 이시다(2016년 파산)는 각각 구두제작, 패션잡화 도매업을 했던 기업이다.

#가네보화장품, 전범기업 가네가후치가 뿌리 

시민문화재단인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 운영하는 '광주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 사이트는 광주광역시와 관련된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일본 전범기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광주역사문화자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가네가후치방적은 1929년 현재 광주의 학동 평화맨션 일대에 1만6932평의 공장을 운영하면서 종업원 322명을 두고 연간 3만6000근의 생사(生絲, 삶아서 익히지 않은 명주실)를 만든 전남지역 주요 산업체 중 하나였다.

가네보화장품 광고 [자료=가네보 홈페이지]

이후 1935년 가네가후치방적은 임업시험장과 논밭이 있던 광주 임동에 공사비 600만엔을 들여 10만평 부지의 방적공장을 설립했다. 이 방적공장에는 2500명에 달하는 여공들이 자발적 또는 강제동원되어 일했는데 질병과 사고로 죽어나가는 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가네가후치의 현재 모습은 두 가지 형태로 기억해야 한다.

유명 화장품브랜드 가네보화장품의 일본 홈페이지를 보면 창립연도를 1887년으로 기재하고 있다. 같은해 1887년을 창립일로 삼고 있는 또 다른 회사도 있다. 바로 식품·제약업을 하고 있는 크라시에(Kracie)다.

현 시점에서 보면 전범기업 가네가후치를 그대로 이어온 기업은 가네보화장품이 아니라 크라시에다. 가네가후치는 2006년까지 가네보화장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시작된 경영실적 악화로 인해 결국 일본 굴지의 화학기업 카오그룹에 가네보화장품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네보화장품의 현 소속이 가네가후치가 아닌 카오그룹이라고 해서 전범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역사마저 지워지는 건 아니다. 따라서 전범기업 가네가후치의 현존기업은 크라시에, 가네보화장품 두 곳 모두라고 봐야한다.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2016년 발간한 위원회활동보고서의 피해자명부에는 가네가후치 방적에서 강제동원을 당한 피해자 5명의 이름이 확인된다.

피해자들은 1941년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까지 가네가후치방적 광주공장에서 노무자 생활을 강요당했다. 피해자 숫자가 5명 뿐인 것은 강제동원 근거가 확보된 경우에만 피해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강제동원 전력' 구두업체 리갈코퍼레이션  

리갈코퍼레이션(リーガルコーポレーション)은 일본의 대표적인 구두 제조 회사이다.

1902년 일본제화주식회사로 출발한 리갈은 1903년부터 군화를 생산하기 시작해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납품했다. 당시 일본 내에 작업장을 두고 조선인을 강제동원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2012년 이명수 의원실이 발표한 299개 전범기업 명단에 리갈의 이름이 올라가면서 드러났다.

리갈은 자사 홈페이지에 1903년부터 군화를 생산하고 1945년 종전이 돼서야 민간에 납품할 신발을 생산하는 체제로 운영방식을 전면 전환했다고 밝히고 있다.

리갈 코퍼레이션 광고 [자료=리갈 홈페이지]

리갈은 국내 제화기업인 금강제화와 지난 2017년 소송 전을 겪기도 했다. 금강제화가 자사의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한 것이다.

이후 1년간의 소송 전 끝에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금강제화가 적법하게 상표를 등록한 만큼 일본 리갈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제화시장 1위 자리를 꿋꿋이 지켜오는 데 있어 적지 않은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들인 점'을 근거로 들어 금강제화 측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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