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동신미곡상회에서 최한진(59) 씨가 비가 그치자 점포정리를 하고 있다. 최한진 씨는 지난 2015년 8월부터 건물주와 명도소송 중에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서울 종로구 내자동 24
최근 서울 서촌을 찾는 유동인구가 급증하면서 이 지역내 입지가 좋은 도로변 매장의 권리금은 1억원 이상 치솟은 상태다.
서촌 상권 중에서도 외식업소가 집중된 곳은 경복궁역 2번 출구 쪽 금천교 시장이 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와 3번출구 쪽
'갤러리&카페거리'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는 현재 60여개의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그 중 내자동 24번지 상가 건물에는 점포 3개 중 2개 업소가 영업하고 있다. 거리의 활성화에 톡톡한 역할을 한 맥줏집 '열정감자'와 최한진(59) 씨가 10년째 운영하는 동신미곡상회(쌀집)다. 두 가게 사이 만둣집은 장사를 접었다.
▲ 시장 골목 끝에 위치한 내자동24번지 상가건물의 점포 |
이 건물은 건물주와 상인들이 권리금 문제로 다투고 있다. 갈등은 작년 건물주가 바뀌면서 시작됐다. 쌀집과 열정감자는 상가 임대차계약 계약만료일이 남았지만 명도 전문 법률대리인을 앞세운 건물주로부터 계약 해지 요구를 받고 있다.
"건물주가 월세도 받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쌀집 주인 최 씨의 말을 들어봤다.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월세를 내고 싶어도 건물주가 전화를 받지않아 공탁서를 작성해 월세를 내왔어요. 건물주가 직접 장사할 생각인 것 같은데 권리금은 주기 싫은가 봅니다. 저는 서촌에서 40년 동안 쌀집을 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만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죠. 권리금은 곧 생존권입니다. 자리를 옮겨 주려해도 권리금 없이는 어디서도 장사를 할 수 없습니다. 자식들 서울사람 만들려고 여기서 40년을 일해왔는데, 결국 이렇게 쫓겨나야 하는 건가요?"
열정감자를 운영하는 김윤기(30) 씨도 비슷한 입장. 그는 "작년부터 상가권리금 법제화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아직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훨씬 많다. 임대차 보호가 5년이라지만 실상 2년이 지나고나면 묵시적 갱신이다. 이 때부터는 보호받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 "자식들 서울 사람 만들기 위해 서촌에서 40년을 일했다"는 최한진 씨는 명도소송 관련 문서만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
▲"서촌에서 쫓겨난다는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옵니다." |
#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6-1
"저는 두번 쫓겨날뻔 했습니다." 임대인 '리쌍'의 건물에서 곱창집 '우장창창'을 운영하고 있는 서윤수 씨의 말이다.
서 씨는 건물주인 리쌍의 멤버 길성준, 강희건 씨와 2012년 5월부터 4년째 싸우고 있다. 2010년 11월 문을 연 '우장창창'은 2012년 5월 리쌍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리모델링을 이유로 퇴거 명령을 받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5년 간 영업기간을 보장하도록 돼 있지만 '환산보증금'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보호 받지 못한다.
▲ 11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숲길 '우장창창' 곱창집 앞에서 서윤수 씨가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집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가로숲길 '우장창창'은 가수 리쌍의 멤버 길성준 씨의 건물의 점포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서 씨는 하는 수 없이 2013년 8월에 같은 건물 지하1층으로 이전하고, 또 1층 주차장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할 때 임대인이 도와주기로 한다는 내용을 넣어 계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주차장 영업에 민원 신고가 들어갔다. 임대인 측은 이듬해 1월 서 씨의 주차장 사용이 건물 리모델링 공사에 피해를 줬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임대인 측은 강경했다. 작년 초 "서 씨가 계약갱신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으므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대로 나가야한다"는 내용으로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임대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 씨는 "계약 갱신을 하지 않을거면 내가 왜 소송을 했겠냐"며 재판부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우장창창'은 지난 4월 27일부로 명도 강제집행 통보를 받은 상태다.
▲ 리모델링 중인 리쌍의 가로숲길 건물 |
▲ "계속 장사하고 싶습니다." |
# 서울 중구 명동 66-6
지난 3월17일 명동 번화가 초입의 상가점포 건물에서는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주당'들에게 이름난 민속주점인 초가집이 있는 건물이다.
사설 용역회사 직원들이 투입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임차인들과 '맘상모' 회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유혈 사태까지 벌어지는 지경에도 강제집행은 이뤄졌다. 현장은 경찰 병력이 벽을 쳐주고 있었다.
▲ 지난 3월 17일 서울 명동 밀키비 점포가 있는 건물에 강제집행 용역이 투입됐다. /이명근 기자 qwe123@ |
▲ 쓰러진 세입자 |
이 건물 1층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 '밀키비'는 4년 전 3억원 상당의 권리금을 주고 점포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건물주가 상가 재건축에 나서면서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강제집행으로 쫓겨난 상태다.
임차인 측에 따르면 건물주인 영화기업은 과거 재건축에 대한 고시를 하지 않고 임대차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재건축을 추진했다. 임차인은 퇴거 요구에 맞서 권리금 보상을 주장했지만 명도 소송에서 패소했고 결국 쫒겨나는 신세가 됐다.
▲ 권리보호를 외치는 임차인 |
▲ 현재 명동 상가건물은 임차인을 쫓아낸 뒤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
▲ '위험, 접근금지' |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그늘
도심과 가까운 낙후지역이나 뒷골목 상권에 원래 살던 저소득층이 떠나고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이를 대체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한다.
중·상류층 사람들이 유입돼 낙후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점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새로 포장된 도로와 깔끔한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 고급 레스토랑들에 의해 원래 이곳을 지키던 이들의 생존권은 보장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리금을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기존 상권에 자본이 유입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면 과거 권리금을 주고 장사를 시작한 임차인이 이를 회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해 권리금 문제 등에서 상가 임차인들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빈틈이 많다. 여전히 서울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를 말해준다.
▲ 11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숲길 '우장창창' 곱창집 앞에서 서윤수 씨와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회원들이 "함께 삽시다, 같이 삽시다"를 외치고 있다. |